[인도네시아 시위사태=진세근 특파원 4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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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인도네시아 시위사태가 현재 대폭발을 앞둔 임계점 (臨界點)에 도달했는지, 아니면 종전상태로 복귀하기 위해 반환점을 도는 중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시위주도 학생.주민들의 열띤 분위기와는 정반대로 중산층 대다수는 더 이상의 시위가 자국 경제난 극복에 도움이 되지 않으며 수하르토 체제를 무너뜨리기에도 역부족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정치개혁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IMF 관리아래서 속히 벗어나려면 소요사태 없이 전국민이 단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지식인들의 모습에서는 약간의 딜레마도 엿보였다.

11일 메단시 벙아디가 (街)에서 만난 거리주둔군 책임자 조코 프리하르토 소령은 "학생들이 지금처럼 몰아붙인다고 수하르토 정권이 무너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지도자는 국가가 내리는 것이고, 그 지도자는 천명 (天命)에 의해 순리적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 우리나라 건국이념인 '판차실라' 의 기본사상" 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현재 학생시위는 한계에 와 있다. 앞으로 전과 같은 폭발력을 보이는 경우는 없을 것" 이라고 잘라 말했다. 시내 수딜만가에 자리잡은 시경찰국에서 만난 하리 바스카라 (48)치안국장은 최근의 학생시위.폭동을 '망국적 행위' 라고 격렬하게 비난했다. 그는 "인도네시아는 지금 지옥으로 가는 베착 (승객용 삼륜차) 을 타고 있으며 그 베착은 일부 지식계층이 끌고 있다" 고 비유했다. "학생들의 주장에도 일리가 있다.

위란토 국방장관 겸 통합군사령관도 '학생들에게 충분한 메시지를 받았다' 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제는 (시위를) 멈춰야 한다. 계속될 경우 우리 모두 공멸할 수밖에 없다. 정부가 '최후의 선택' 을 강요받지 않도록 학생들은 이쯤에서 자제해야 한다" 고 그는 경고했다.

메단에서 도소매업을 하고 있는 한국인 교민 김석원 (金錫源.42) 씨도 이번 시위가 체제개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낮다고 보았다. 그는 "정권이 무너지려면 군부가 적극적으로 동조하거나 적어도 묵인해야 하는데 현재 군부에는 전혀 그런 움직임이 없다" 며 "이번 시위는 찻잔속 태풍으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 고 말했다.

북수마트라대에서 만난 경제학과 뱅칼 긴팅 (35) 교수도 "우리도 학생들의 의견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방법과 정도가 문제다. 정부에 합법적인 개혁을 요구하려면 요구수단도 합법적이어야 한다" 고 강조했다. 뜻은 좋으나 폭력은 옳지 않다는 얘기다. 이 대학 강사 사리 (34.국문과) 는 "요즘 학내조직은 과거와 달리 학생.교수간 협의체로 운영되고 있다" 며 "우리는 학생들에게 시위를 평화적이고 건설적인 방향으로 이끌도록 설득하고 있다" 고 말했다."

이제는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서로 힘을 합쳐야 할 시점" 이라는 은행원 하티 (37.메르카티은행) 의 주장은 다수 중산층과 기득권층을 대변하는 말로 들렸다. 인도네시아에서도 '정치민주화' 와 '경제회복' 사이에는 서로 다른 시각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메단 = 진세근 특파원

〈sk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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