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초인플레 경고 귀담아 들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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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도미니크 스트로스칸 국제통화기금(IMF) 총재와 로버트 졸릭 세계은행 총재가 최근 “대형 경기부양책의 후유증으로 초(超)인플레이션이 발생할 수 있다”고 한목소리로 경고했다. 시장 움직임도 심상찮게 돌아가고 있다. 미국 재정적자 확대와 인플레 우려가 맞물리면서 미 국채 금리는 석 달 만에 연 2.5%에서 연 3.9%로 뛰어올랐다. 국제유가도 배럴당 70달러를 넘어섰다. 이런 가파른 상승세를 놓고 경제위기를 벗어났다는 단순한 안도감을 넘어 앞으로 급격한 인플레가 닥칠지도 모른다는 위험을 반영한 것이라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이에 대해 “지금은 수요가 공급보다 위축돼 있는 만큼 그 부족분인 디플레이션 갭을 메우는 게 더 시급하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5월 취업자 수만 봐도 1년 전에 비해 21만9000명이 줄어들어 외환위기 이후 최대의 감소폭을 기록했다. 또 당장 초대형 인플레가 급습할 것으로 보는 전문가는 없다. 하지만 더 이상 경기부양만 고집할 시기는 지난 게 분명하다. 경제위기 타개를 위해 그동안 인위적으로 초저금리를 유지하고 엄청난 유동성을 시중에 풀었다는 사실을 외면해선 안 된다. 지금은 좀 더 길게 내다보고 경제위기 이후의 출구 전략을 세심하게 손질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인플레를 차단하려면 시중 통화를 흡수하고 재정 지출을 줄이는 게 일반적 해법이다. 문제는 여전히 경제의 기초 체력이 취약한 상황에서 금리를 올리고 긴축을 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그러나 지금까지처럼 경기침체를 막기 위해 돈을 풀고 금리를 내리기만 해온 기계적 대응에는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 머지않아 경기 회복과 물가 상승 저지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할 어려운 상황이 다가올 게 분명하다. 정부와 한국은행은 경제동향에 더욱 촉각을 곤두세우고 어떤 정책을 선택할지 깊이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지난 10년만 돌아봐도 잘못된 출구 전략이 엄청난 화를 부른 경우가 허다했다. 닷컴 버블 붕괴와 9·11 테러 이후 전 세계적인 초저금리와 과잉 유동성이 결국 서브프라임 쇼크와 세계 경제위기를 초래했다는 교훈을 잊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