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러디, 잘못된 현실 지적·폭로가 목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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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서울에 이런 곳이 있을까 싶은, 서울 마포구 구수동의 낡은 건물에 최신 인터넷 패러디 사이트 미디어몹(www.mediamob.co.kr)이 둥지를 틀고 있었다. 미디어몹(media+mob)은 제목 그대로 개인들의 1인 미디어인 블로그의 집산지일뿐 아니라 '헤딩라인 뉴스'같은 패러디 동영상을 자체제작해 네티즌들의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출범한 지 불과 4개월 남짓이지만, 기존 방송매체의 엄숙주의 뉴스를 패러디한 '헤딩라인 뉴스'는 KBS-2TV '시사투나잇'의 고정물로 공급될만큼 자리를 잡았다. 어느새 직원이 17명으로 늘어나 이웃 건물의 방송스튜디오 외에 이 사무실까지 곁가지를 치게 됐다. 편집장 최내현(33)씨는 국내 패러디 미디어의 효시로 꼽히는 '딴지일보'기자 출신. 인터넷의 상용화와 함께 붐을 이룬 패러디 물결을 현장에서 겪어온 셈이다. 마침 청와대 홈페이지에 오른 '박근혜 패러디'로 나라안팎이 시끄러운 와중이었다. 우선 그 패러디 얘기부터 꺼냈다.

▶ 미디어몹 편집장 최내현씨

-'박근혜 패러디'를 어떻게 보나.

"패러디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그걸 청와대 홈페이지의 주요메뉴로 올려놨다는 게 문제다. 청와대라는 국가기관은 사기업이나 정당과는 분명 다르다. 청와대 사이트 관리자는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패러디가 문제라는 식의 문제제기는 동의할 수 없다. 나라면 그런 방식으로는 패러디를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은 한다. 패러디는 말하고자 하는 것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수단이다. 부적절한 패러디는 오히려 역효과를 낸다."

-미디어몹은 어떻게 시작했나.

"예전에는 딴지일보가 쓰면 제일인 줄 알았지만, 그보다 잘 쓰는 사람이 네티즌들 가운데 부쩍 늘어났다. 이런 좋은 글들이 지나가는 통로 개념으로 시작했다. '헤딩라인 뉴스'나 최근 시작한 '카메라 출장'처럼 우리가 제작한 컨텐츠도 있지만, 미디어몹 홈페이지 메뉴 우측에 배치했다. 인터넷은 우측보다 좌측 메뉴가 훨씬 주목도가 높다. 일반인들의 블로그 뉴스를 좌측에 두어서 당신들이 들러리가 아니다, 중심이다, 라는 메시지를 담은 것이다. 인터넷은 열려있는 공간인 동시에 위계화된 공간이다. 여기와 저기의 링크를 독점하는 권력이 생겨난다. 게시판의 댓글만해도 밑으로 내려가면 남들이 보기 힘들어진다. 블로그는 상대적으로 평등한 링크가 형성된다. 새로운 전자민주주의 실험장이다. "

-자고 나면 일반인이 만든 패러디물이 인터넷에 쏟아지는 일은 다른 나라에서 보기 힘든 현상이다. 우리나라는 왜 이런걸까.

"두 가지로 생각한다. 하나는 한국이 세계 최고의 인터넷 강국이라는 점이다. 흔히 우리나라 사람들이 책을 안 읽는다고 하지만, 날마다 이렇게 많은 인터넷 텍스트를 읽고 쓰는 나라는 보기 드물다. 다른 하나는 지난 총선과 같은 정치적인 이슈의 폭발이다. 당시 각 정당은 거의 자학의 퍼레이드를 벌였다. 스스로 회초리를 때리고, 3보1배를 강행했다. 이렇다할 구체적인 이유는 말하지 않고서. 국민에게 희망찬 미래 구상을 보여주는 대신 감성, 아니 본능에 호소하는 식이었다. 패러디는 이런 현상에 대한 끊임없이 이성적인 주의를 환기시키는 역할을 했다고 본다. 저마다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돌아가는 사회에 대해 무기력감을 느끼던 개인들이 참여의식을 발휘한 것이다. "

-패러디물에 대해 인신비방 같은 위험성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는데.

"그런 위험보다는 정치참여의 욕구를 북돋우는 순기능이 더 크다고 본다. 그리고 패러디물을 보는 사람도 판단 능력이 있고, 네티즌들의 자율적인 조정기능이 있다. 예컨대 '박근혜 패러디'를 보면서 너무하는데, 하는 반감을 갖게된다면 결국 패러디 제작자의 의도와는 다른 결과를 낳게 된다. 저급한 패러디라면 네티즌들이 퍼가지도 않고, 사장된다. 독자들도 많이 달라졌다. 1990년대말만 해도 이전에는 금기시되던 실명비판이 인기를 모았다. 학계에서는 강준만 교수, 인터넷에서는 딴지일보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그런 금기가 깨지면서 오히려 칭찬하는 얘기가 주목을 받는다. 딴지일보 시절 한나라당 이상희 의원을 재조명하는 기사같은 게 호평을 받은 기억이 난다. 개인을 공격하는 게 패러디의 목적은 아니다. 현실의 잘못된 것을 지적하고, 폭로하려는 것이다. 비방이 주목적이었다면 패러디가 이렇게까지 인기를 얻지 못했을 것이다."

-저작권이나 명예훼손같은 법적인 문제는 어떻게 보나.

"아직까지 직접 문제제기를 겪은 적은 없다. 패러디는 살짝 비틀어서 재미있게 전달하는 것이다. 원저작자나 비판의 대상이 된 사람이 정색을 하고 나서면 우스워지게 마련이다. '적절한 선'을 지키면 된다고 본다. 패러디는 원저작물이 유명해야 한다. 그래야 패러디인줄 알지. 결국 패러디의 대상은 일종의 사회적 재산이 되는 것이다."

-패러디계에도 누구 누구가 전문가다, 하는 식의 계보가 존재하나.

"글쎄. 우리도 사람 구하려고 애써봤는데 생각보다 전문가가 많지 않다. 시사문제에도 해박하고, 영화같은 대중문화도 잘 알고, 이 둘을 결합하는 상상력과 글재주까지 있어야 한다. 여기저기서 활동하는 사람들 가운데 내가 아는 이들은 딴지일보 출신들이 많다. "

-베스트 패러디를 꼽아본다면.

"음…딱 떠오르지 않는다. 매일매일 너무 많이 봐서 그런가보다. '병렬연결'이 생각난다. 헤딩라인 뉴스에서 최근에 한 '천지창조'도 반응이 좋았다. 딴지일보 시절 노무현대통령과 검사와의 대화를 딴지총수와 직원들의 대화로 패러디했던 것도 기억난다."

-패러디라는 표현방식의 미래를 어떻게 보나.

"패러디를 위해 패러디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패러디물 자체의 미래를 논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다만 팩트를 재미있게 가공하는 방식으로서 의미를 갖는다고 본다. 기존 뉴스도 갈수록 연성화되어가지 않나. 딱딱한 텍스트를 던져주고 읽으라는 대신, 씹어 삼키기 쉽도록 창조적으로 가공하는 시대다. 외부적인 조건도 필요하다. 패러디물이 터져나오는 때는 대중들이 부당하다고 느끼는 사안이나 이슈가 있을 때다. "

-미국에서는 '총알탄 사나이'같은 시리즈가 패러디 '산업'의 가능성을 보여줬지만, 국내의 '재밌는 영화'는 단발성 화제로 끝났다. 패러디가 돈이 되나.

"우리는 컨텐츠 회사다. 컨텐츠가 좋으면 된다고 본다. 물론 매체가 전과 비교할 수 없이 많아지기는 했다. 기술적인 측면도 있다. 문자 텍스트에서, 이미지를 추가하고, 동영상으로 바뀐 것이 불과 4,5년 사이의 일이다. 우리의 경우 아직은 일반인들이 우리처럼 스튜디오를 차리고 본격적인 동영상을 만들기는 힘들다는 점이 우위다."

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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