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WCA]실업충격완화 프로 졸업생 '재기 충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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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퇴직금은 고사하고 빚보증과 우리사주를 상환하니 당장 집사람이 식당에 나가지 않으면 생계가 막막하게 됐어요. 아내가 오후9시가 다 돼 손이 퉁퉁 부은 채 들어오면서 오히려 '당신, 시간 잘 보냈느냐' 고 위로해 줄 때는 눈물이 솟구칩니다. " 연봉 5천만원이 넘었던 증권사 지점장 출신인 장모 (45) 씨. 지난 1월 해고당한 이후 그의 모습은 너무도 달라져 있다.

그의 하루 용돈은 2천원. 담배 한갑과 버스비로 쓰고 점심은 무료로 먹을 수 있는 곳을 기웃거린다. 장씨는 실직의 충격을 감당치 못해 결국 서울 YWCA연합회가 실직자들을 위해 지난달 20일부터 개설한 실업충격완화 프로그램의 학생이 됐고 7일 수업을 마친 후 졸업장을 받았다.

이날 정오 서울명동 대한YWCA연합회 회의실에는 장씨와 마찬가지로 한창 일할 나이인 30~40대 실직자 40여명이 다시 일어설 것을 다짐하며 졸업장을 받았다.

장씨는 실직 동기생들이 모인 자리에서 "최근 순대국밥집을 하려고 잘된다는 국밥집 앞에 서서 며칠간 손님수를 하루종일 헤아렸다.

점심을 때우려고 햄버거를 무는 순간 눈물이 나와 그냥 울고 말았다" 고 자신의 처지를 하소연해 주위 사람들의 눈시울을 뜨겁게 했다.

임신 6개월이라는 이유로 유아복회사 디자이너실 과장으로 근무하다 지난 3월 해고당한 정모 (31) 씨. 그는 "앞다퉈 잘라대는 직장분위기가 아이한테도 안좋을 것 같아 할 수 없이 받아들였지만 분이 가라앉지 않는다" 고 했다.

S그룹 부장출신 金모 (45) 씨는 "80년대 수출역군으로 해외를 누비며 밤새워 일한 결과가 중학생 아이 둘의 학비나 걱정할 실업자 신세가 됐으니 도저히 믿어지지 않아 잠을 설친다" 고 말한다.

金씨는 최근 정부가 실업자 대출을 해준다길래 은행에 찾아갔다가 무안만 당했다.

은행 직원이 퉁명스런 말투로 보증인을 세우라고 했던 것. 金씨는 " '한국의 IMF는 가진자에게 선물' 이라는 앨빈 토플러의 말이 실감나더군요. 누가 실업자에게 보증을 섭니까. 차라리 실업자를 농락하는 이런 대책은 없는 게 속 편합니다" 고 내뱉는다.

"실업자들끼리 만나면 진짜 필요한 눈높이 정보가 쏟아진다" 는 이들은 한달에 한번 서로를 북돋우려 모임도 만들었다.

이름은 '동병상련 (同病相憐)' .지난 10여일간 서로의 아픈 마음을 애써 달래주며 애환을 나눴던 이들은 졸업식을 끝으로 각자 제 갈길로 나섰다.

하지만 당장 내일부터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내야 될지 걱정이 태산이다.

김태진 기자

〈tj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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