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반업체, 히트곡 편집음반 '명작' 성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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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부끄럽습니다. 제가 살림이 워낙 어려워 판권을 내줬지요. 조금만 사정이 좋았어도 이런 프로젝트에는 눈도 꿈쩍 않았을텐데…. " 한 유력 가요프로덕션 사장은 얼마전 기자와 대화도중 테이블위에 놓인 편집음반 '명작' 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판권료를 받고 이 음반에 자신의 전속여가수 노래를 싣게해준 걸 두고 그는 "부끄럽다" 를 연발했다. 여러 가수의 히트곡을 골라담은 컴필레이션 (편집) 음반에 대해 가요계는 여태까지 이처럼 부정적 입장이었다. '지나치게 상업적인 음반' 이란 이유였지만 실은 편집음반이 정규음반 판매고를 잠식하리란 걱정때문이었다.

그래서 가요에선 팝처럼 둘 이상의 프로덕션이 연합해 만드는 편집음반이 나오지 못했다. 하지만 이젠 찬밥 더운밥 가릴 때가 아니다.

유례없는 음반 판매급감으로 된서리를 맞은 가요업계는 편집음반의 필요성을 절감하게됐다. 지난해말 록레코드에서 나온 첫 가요편집음반 '명작' 1집은 12만장, 2집은 7만장, 그리고 한달전 나온 3집은 6만장 팔렸다. (자체집계)

반면 강산에.신성우같은 스타급 가수의 신보는 5만장에 턱걸이하는 수준이다. (그들은 지난해같으면 적어도 20만장은 보장되는 가수다. ) IMF 빙하기에 음반사가 살아남으려면 노래 한곡을 듣기 위해 음반을 살만큼 적극적이진 않지만 불법음반을 사기엔 마음이 내키지않는 부동층 고객을 잡아야한다. 그 수단이 컴필레이션 음반이다. '명작' 의 성공을 통해 최소 5만장은 보장되는 확실한 원군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메이저 음반업체들은 최근 앞다퉈 편집음반을 내놓고있다. 김경호의 '마지막 기도' 녹색지대의 '사랑을 할거야' 등을 모은 예당음향의 '베스트 오브 베스트' 시리즈를 필두로 김종서의 '희망가' , 박지윤의 '하늘색 꿈' 등을 모은 서울음반의 '핫클립' , 김정민의 '슬픈 언약식' ,에코의 '언제까지나' 등을 모은 뮤직디자인의 '너에게 들려주고싶은 명곡' 시리즈가 줄줄이 출시 또는 출시 대기중이다.

예당음향은 올해 낼 30~40장의 가요음반중 8~9장을 컴필레이션으로 충당하며, 서울음반도 출시예정인 25장중 3장을 컴필레이션으로 낼 계획이다. 이달초 '명작' 4집을 낼 록레코드는 이 시리즈를 7집까지 밀고나간뒤 60.70년대 '클래식' 모음집을 추가로 내기로해 선두주자다운 의욕을 보인다.

편집음반 붐에따라 그동안 경쟁관계였던 메이저 음반사들이 되도록 많은 수록곡을 확보하려고 합종연횡을 꾀하는 것도 새로운 풍경이다. 예당음향은 이소라.김현철등의 히트곡 판권을 보유한 동아기획과 손잡고 '베스트 오브 베스트' 2집을 냈고, 발라드 히트곡 판권이 많은 서울음반과 도레미음반사도 제휴를 모색중이다.

폴리그램과 EMI가 손잡고 '나우' 시리즈를, 소니와 워너가 '맥스' 시리즈를 내는 팝계와 비슷한 현상인 것이다. 편집음반은 '예술성' 과는 거리가 먼 상업음반이다. 또 히트곡 축적량이 한정된 국내에서 편집음반이 잇따라 나오다보면 레퍼토리가 고갈돼 한때 바람으로 끝나리란 예상도 있다.

어쨌든 편집음반 붐은 소비자로서는 히트곡만 골라들을 수 있어 일단 환영할 일이다. 또 '히트곡모음집' 이 대부분인 불법 복제음반을 대체하는 효과도 기대된다.

그러나 경쟁이 과열될 경우 팝계처럼 경품등 음악외적 요소로 손님을 끌려는 추태가 우려되고있기도하다. 이와함께 가요계에서는 본격 편집음반 시대를 열기위해선 수록곡을 작곡.작사.편곡한 사람에게 주는 로얄티 가격을 내려야한다고 주장하고있다. 소매가의 7%인 현행 로얄티는 대부분의 나라가 채택한 로얄티 (출고가의 5.4%)에 비해 지나치게 비싸다는 것이다.

강찬호 기자 〈stoncold@joon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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