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리키즈 김인경, 세리를 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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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골퍼 김인경(21ㆍ하나금융). 키 1m58cm의 이 ‘땅꼬마’ 처녀를 만난 사람들은 보통 두 가지에 놀란다. 하나는 자그마한 체구에서 나오는 폭발적인 샷에 놀라고, 또 하나는 좀처럼 기가 죽지 않는 당찬 모습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다. ‘똑순이’란 별명도 그래서 얻었다.

8일(한국시간) 미국 일리노이주 스프링필드의 팬더크리크 골프장(파72ㆍ6746야드)에서 끝난 LPGA투어 스테이트팜 클래식은 김인경의 진면목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는 무대였다. 전날까지 선두에 2타 뒤진 공동 4위를 달렸던 김인경은 마지막날 7언더파를 몰아쳐 합계 17언더파로 역전 우승을 차지했다. 우승상금은 25만5000달러(약 3억2000만원).

◆박세리 키즈,박세리를 넘다=우승 트로피의 주인공은 박세리(32)도,신지애(미래에셋)도 아니었다.전날까지 선두를 1타차로 뒤쫓던 신지애는 이날 2타를 줄이는데 그쳐 12위로 내려앉았다. 박세리는 1~3번홀 연속 버디에 이어 16번홀에서도 한 타를 줄여 2년만의 우승을 노렸지만 한 타가 모자랐다.

반면 김인경은 수잔 페테르센(노르웨이),헬렌 알프레드손(스웨덴) 등 북구의 장타자들과 같은 조에서 대결을 펼치면서도 전혀 밀리지 않았다. 페테르센이 4타를 줄이는 동안 김인경은 정교한 샷을 앞세워 7언더파를 몰아쳤다.7번홀 보기가 옥에 티였을 뿐 이날 무려 8개의 버디를 잡아냈다.

1988년생인 김인경은 박세리가 98년 US오픈에서 우승한 것을 보고 골프를 시작한 대표적인 박세리 키즈. 이날 우승으로 자신의 우상을 뛰어넘은 것이다. 수화기를 통해 들려오는 목소리는 통통 뛰었다.

“페테르센 등 장타자들과 맞대결을 펼쳤지만 전혀 떨리지 않았어요. 페어웨이만 지키면 승산이 있다고 생각했지요. 더구나 바람까지 많이 불어서 장타자라해도 정확성이 떨어지면 오히려 힘들었을 거예요.”

김인경은 또 “17번홀 버디를 잡아낸 뒤 우승도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7번 홀에서 워터해저드에 공을 빠뜨렸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인경은 지난해 10월 롱스드럭스 챌린지 대회에서 첫 우승을 거뒀던 투어 3년차. 신지애ㆍ오지영에 이어 한국 선수로는 올시즌 세번째 우승 트로피의 주인공이 됐다.초등학교 3학년 때 아버지 김철진(56)씨를 따라 연습장에 갔다가 골프에 입문한 그는 한영외고 1학년이던 2005년 골프 유학을 위해 혈혈단신으로 미국에 건너갔다.

“처음엔 말을 하기가 무서웠어요.영어를 못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3년 동안 한국 드라마는 일절 안보고 미국 영화와 드라마만 봤어요. 한국 노래도 끊고 미국의 MTV만 줄기차게 봤지요. 그랬더니 귀가 뚫리고,입이 열리더군요.” 좋아하는 가수는 비틀즈.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얼마전 기타를 배워 비틀즈의 렛잇비(Let it be)정도는 가볍게 연주할 수 있다”고 털어놓았다.

◆박세리도 선전=박세리도 오랜만에 날카로운 샷을 앞세워 2위(합계 16언더파)에 올랐다.비록 2년만에 찾아온 우승 기회를 놓쳤지만 그의 카리스마는 전성기를 연상시켰다. 박세리는 경기를 마친 뒤“김인경이 대견스럽다”며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축하인사를 건넸다.미셸 위는 공동 54위(합계 4언더파).

정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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