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보균의 세상 탐사] MB 권력의 이미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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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호 02면

경제 제일주의는 맞다. 경제 살리기는 국민적 요구다. 하지만 그 자체로는 민심을 잡지 못한다. 경제에 혼(魂)을 담아야 한다. 서민의 애환과 얽혀 작동하는 혼 말이다. 서민과 약자의 고단하고 부대낀 삶을 바꿔줄 의지가 넘쳐야 한다. 이명박(MB) 정권은 그 혼을 소홀히 했다. 그 이미지 관리의 시점을 놓쳤다. 어느새 이명박 정권은 ‘부자 정권’이란 논란에 시달린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추모 물결에 정서적 공감대가 있다. 그 물결은 사회적 약자와 밑바닥 서민의 염원과 갈망을 상징한다. 그 속에 노무현은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의 수호자다. 그들을 위해 기성 질서에 맞섰던 저항의 전사(戰士)다.

대중의 연민과 동정은 그런 신화를 키운다. 그것과 실제 정책 결과에 차이가 있다. 노무현 정권의 민생 경제는 혼란스러웠다. 강남 아파트 값을 잡는다고 했다. 하지만 어설픈 정책 탓에 값은 두 배로 뛰었다. 서민 편에 서려 했지만 서민의 삶을 힘들게 했다. 양극화의 골은 깊어졌다. 역설적인 좌절이었다.

자결적인 죽음은 대중을 관대하게 했다. 민심의 반전은 거대했다. 그들은 노무현 정신을 재발견하려 한다. 서민을 내세운 노선을 위대한 도전이라고 열광한다. 그 좌절의 원인을 기득권 세력의 반발 탓으로 간주한다. 실질보다 명분을 중시하는 게 한국적 정서다. MB 정권의 ‘강부자’ 이미지는 그런 분위기를 뒷받침했다.

서민과 함께하는 이미지는 강렬하다. 정치적 파괴력은 엄청나다. 여기에 대중의 동정심이 담기면 불패다. 반면 부자 위주라는 인상을 주면 치명적이다. 이명박 정권은 그런 상황에 빠지고 있다. MB정권은 이미지 전쟁에서 실패했다. 종합부동산세 완화부터 그랬다. 정부는 징벌적인 세금 체계를 바로잡는다고 했다. 그것은 정상화 측면에서 타당하다. 그러나 서민의 의심과 소외감을 달래는 데 미숙했다. 부자를 위한 게 아니라 경제 전체를 살리는 고육지책(苦肉之策)임을 줄기차게 설득해야 했다. 서민·중산층 후속 대책을 제대로 내놓지 못했다. 빈부·이념의 편 가름이 담긴 대못의 제거 작업은 허술했다.

MB정권의 이미지는 부지런함, 이념을 넘는 실용, 경제 워룸, 선제적 경제 대응이다. 그것만으론 대중의 열망과 감동을 끌어낼 수 없다. 그 한계는 오래전에 드러났다. 4·29 재·보선 패배(인천 부평을) 때도 증명됐다. 그 이미지는 서민의 비원(悲願)과는 거리가 있다. 결단의 면모는 허약하다. 김정일 정권의 핵 협박에 결연한 대응 자세를 보여주지 못했다. MB정부는 독자적인 응전 의지를 과시하지 못하고 있다. 한·미동맹, 국제협력에만 기대는 모습이다. 정치는 선택이다. 국정은 결의의 연속이다.

MB 권력의 이미지는 바뀌어야 한다. 서민과 함께하는 소탈함을 갖춰야 한다 . 국민은 비장한 결단의 리더십을 기대한다.

국정 관리는 언어의 운영이다. 미국 대통령 버락 오바마는 그 점을 실천하고 있다. 그의 롤 모델은 에이브러햄 링컨이다. “위대한 링컨은 말의 힘과 의지로 갈라진 나라(남북전쟁)를 구했다”고 역설한다. 노무현의 간결한 유서는 언어의 대중 동원력을 실감케 한다.

MB는 노무현 못지않게 가난했다. 성공 신화도 있다. 그러나 그런 소재를 서민을 위한 국정 드라마로 연결 짓지 못했다. 그는 대통령 취임 때 뉴 스타트 2008 프로젝트를 내놓은 적이 있다. 패자 부활과 서민·영세 자영업자를 위한 민생 대책이다. 그 기조와 다짐은 잊혀진 상태다. 글로벌 경제위기에서 한국 경제는 선방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경제 회복 속도가 가장 빠를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하지만 우리 내부의 ‘서민 프렌들리’는 취약했다.

국정 쇄신은 서민 우선과 결단의 리더십을 다지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그 평판과 이미지를 탈환하지 못하면 힘들다. 권력은 조로(早老) 현상에 허덕인다. 초심에서 새 출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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