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구치 재판소 위안부 판결 의미]사법적 사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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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야마구치 (山口) 지방재판소의 종군위안부 판결은 여러가지 점에서 획기적이다. 먼저 일본사법부가 피해자들이 주장해온 국가배상의 당위성을 처음 인정한 점을 꼽을 수 있다.

재판부는 93년 고노 요헤이 (河野洋平) 관방장관이 위안부 강제연행 사실을 인정하고 사죄한 만큼 입법을 통해 배상할 의무가 있다고 판시한 것이다. 이는 종군위안부 문제와 관련, 잘못은 인정.사죄하되 국가간 배상문제는 65년 한.일기본조약으로 종결됐다는 일본정부의 입장을 뒤엎는 것이기도 하다.

재판부는 다만 45년 일본패전 이전의 가해행위에 대한 배상은 인정하지 않고 일본정부가 전후 피해자들에 대한 '의무' 를 게을리한 점에 초점을 맞췄다.

종군위안부 연구의 권위자인 요시미 요시아키 (吉見義明) 주오 (中央) 대 교수는 "이번 판결은 종군위안부 강제연행.인권침해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패전이전에 대해서는 일본정부의 배상의무를 거론하지 않은 반면 패전후에 대해 정부책임.배상의무를 지운 데 의미가 있다" 고 분석했다.

재일교포 김경득 (金敬得) 변호사는 "일본국회의 입법 부작위 (不作爲) 를 문제삼은 판결로 매우 이례적인 것" 이라며 "현재 일본법원에 계류중인 나머지 5건의 종군위안부 피해배상소송에도 큰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고 말했다.

일본법원이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가해행위와 관련한 재판에서 원고 승소판결을 내린 것도 처음이다. 법원은 지금까지 중국.한국인에 의한 수차례에 걸친 전후배상소송에 대해 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기각해왔다.

이번 판결로 향후 종군위안부 피해배상 문제는 일본국회의 입법조치쪽으로 옮아갈 가능성이 커졌다. 다만 1심판결인 만큼 일본정부나 국회는 최고재판소의 판결을 기다려 보고 입장을 정리할 것으로 판단된다.

일본에서는 지난해 변호사.학자 등을 중심으로 전후처리의 입법 해결을 위한 모임이 결성된 바 있다. 이번 판결로 그동안 한국.필리핀 등 종군위안부 피해자에게 지원금을 지급해오던 여성을 위한 아시아평화국민기금측은 적잖은 타격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도쿄 = 오영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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