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추억어린 장면들 '혼성모방' 부조화속 조화 신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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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최근 광고들의 눈에 띄는 새 흐름 한 가지. 인형을 한 프레임씩 찍어 움직이는 화면으로 만든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이란 새 기법을 사용한 기업 이미지 광고. 이 광고는 기억도 감감한 시절의 전화기와 흑백 브라운관을 보여준다.

그리고 나서 등장하는 그때 그 시절. "홍수환 선수, 라이트, 레프트, 카라스키야 다운~" 하면서 4전5기의 전설이 이뤄지던 바로 그 현장.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 그 통쾌한 장면. 첨단기법과 옛 추억이 어우러지는 순간이다.

신경통 약광고 - . "국민체조 하나 둘 셋~. " 새마을운동.10월유신.군사문화에 대한 기억을 한꺼번에 떠올리게 하는 국민체조. 귀에 못박히도록 들은 구령소리에 맞춰 신경통 약 광고를 한다.

젊었던 시절의 이 노래를 뚜렷하게 기억하는 사람들의 상당수는 지금 이 약을 쓸만한 연배가 됐다는데 착안한 광고인가. 수다스런 아주머니의 상투적 이미지를 대변했던 탤런트 전원주를 세대를 뛰어넘은 스타로 만든 국제전화 광고 - .초원을 달리던 아줌마가 덤블링을 하고 아줌마의 딸이 등장해 "엄마" 라며 눈물을 흘린다.

전원주 자신을 모델로 만든 첨단 컴퓨터 합성화면이다. 이 전자문명의 최신기법 속에 70년대 말 인기를 모았던 TV용 만화시리즈 '짱가' 의 주제곡이 흐른다. 30대 이상에게 아련한 옛 추억의 그림자 같은 노래다.

'노스탤지어' 광고가 인기인가. 이러다간 60.70년대 살았던 사람을 위한 '황금박쥐' '바다의 왕자 마린보이' 까지도 다 광고 주제곡으로 동원되지 않을까. 바꾸어서 맥주광고 - .신성일.엄앵란이 출연했던 '맨발의 청춘' 에 나왔던 장면을 흉내낸다.

지금 기준으로는 촌스럽기 짝이 없는 당시의 말투는 물론 옛날 영화 포스터 장면까지 고스란히 따서 만들었다. '노스탤지어' 기법을 쓰려면 옛날 영화에서 장면을 따지 왜 굳이 오늘의 스타 박중훈을 60.70년대의 대스타 신성일의 이미지로 만들었을까. 게다가 광고의 대상인 맥주의 브랜드는 그 시절 존재하지도 않은 신상품인데…. 추억과 최신 트렌드의 만남이다.

그래서 이들 광고는 단순히 '노스탤지어' 수준에서 그치지 않는다. 이들은 옛 스타들, 흘러간 시절의 상투적인 모습을 새롭게 활용했다.

이때 "과거나 다른 작품에 대한 공허한 흉내" 라는 뜻을 가진 '혼성모방' 이라는 용어가 떠오른다.

많은 사람이 기억 속에 가지고 있을 익숙한 것들끼리, 또는 익숙한 것과 새로운 것, 익숙한 것과 추억을 조합함으로써 새로운 이미지를 만드는 기법이다. 이 언밸런스가 오히려 신선함을 낳는다.

하지만 이들은 공허하기까지 한 과거에 대한 반추를 통해 이 시대의 우리를 새롭게 바라보게 한다. 과거에 대한 기억이 새삼스러운, IMF시대의 한 풍경이다.

채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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