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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 2기 수출은 차 32만 대, 유조선 40척과 맞먹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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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지난달 25일 경남 창원시 귀곡동 두산중공업 내 원자력 공장. 쇠를 깎는 소리가 귀를 때리는 가운데 공장 안에는 항아리 모양의 거대한 쇳덩이가 곳곳에 놓여 있다. 길이 20m, 직경 4m, 무게 370t의 이 쇳덩어리에 각종 부품을 조립해 넣으면 원자력 발전소의 핵심 설비인 증기 발생기가 된다. 가격은 대당 수백억원을 호가한다. 이 증기발생기의 아래쪽에는 ‘Project Name SEQUOYAH #2 RSG’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이영동 공장장은 “미국 세코야 원자력 발전소 2호기에 교체용으로 납품할 증기 발생기라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두산중공업에는 원전 핵심 장비를 모두 자체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설비가 있다. 발전용 터빈도 자체 제작한다. 여기서 만든 원전 설비에 각종 토목 시공 등을 더하면 전기를 생산하는 원자력 발전소가 된다. 두산중공업을 필두로 한국의 원자력 발전소 건설 수준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꼽힌다. 한국은 이를 바탕으로 세계 각지에서 운영되는 원전에 각종 기기를 수출하고 있으며 올해는 아랍에미리트(UAE)에 원전을 통째로 수출하는 계약을 위해 선진국과 경쟁 중이다.

① 창원의 두산중공업 원자력 공장에서 제작 중인 원전용 터빈. 창원=염태정 기자 ② 전남 영광 원자력발전소의 야경. [중앙포토] ③ 경남 창원시 귀곡동 두산중공업 내 원자력 공장에서 직원들이 수출용 핵심 설비인 증기발생기를 만들고 있다. 이 증기발생기는 미국의 세코야 원자력발전소에 교체용으로 사용될 예정이다. 창원=염태정 기자 ④ 두산중공업 직원들이 경남 창원공장에서 중국 친산 원자력발전소에 사용될 원자로를 배에 싣고 있다. [두산중공업 제공]

◆줄이은 원전 발주=국제원자력기구(IAEA)와 교육과학기술부에 따르면 중소형 원자로가 2050년까지 500~1000여 기 신규 건설(350조원)되고 연구용 원자로도 2025년까지 110여 기가 추가로 건설될 전망이다. 총 1000조원이 넘는 규모다.

한국은 그동안 두산중공업을 중심으로 부품과 개별 기기 수출에 주력해 왔다. 하지만 앞으로는 단위 원전 수주가 목표다. 요르단이 원전 수출의 유망 지역으로 떠오르고 있다.

우크라이나 진출도 노리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경우 1986년 체르노빌 원전 폭발 사고 이후 신규 건설을 전면 중단했다. 그러나 온난화·유가 급등에 따라 에너지 전략 2030계획을 수립하고 3기의 원전 건설을 추진 중이다. 2020년까지 최대 40여 기의 원전 건설을 추진 중인 중국 시장에도 각국의 주요 업체들의 관심이 집중돼 있다.

◆쏘나타 32만 대 수출효과=원전 수출에 있어 한국의 경쟁력은 낮은 단가다. 미국 웨스팅하우스나 프랑스 아레바의 경우 발전용량 1㎾당 생산비가 3000∼5000달러인 데 비해 한국 신고리 원전 3, 4호기의 경우 2000달러 선이다. 게다가 한국형 원전은 충분히 표준화돼 있어 공사 기간이 53개월 정도로 짧다. 한국원자력연구원 장문희 선임본부장은 “원전은 다른 어느 산업 분야보다 파급 효과가 크고 부가가치가 높다”며 “원전 1기를 건설하는 데 3조원 들어간다고 보면 이 가운데 10% 정도인 3000억원가량이 이익으로 남는다”고 말했다. 2기씩 수출하는 원전은 1기당 3조원이므로 최소 6조원 규모의 수출 품목인 셈이다. 한국형 원전 2기를 수출할 경우 쏘나타 32만 대, 30만t급 대형 유조선 40척의 수출 효과를 내는 것으로 분석된다.


◆원전은 2기씩 수출=원자력 발전소는 1기가 고장이 날 경우에 대비해 2기 단위로 발주한다. 원활한 운영과 경제성 등도 고려된다.

세계 원전 시장 현황은

미국·프랑스가 사실상 시장 양분
“수출 경험 적고 인지도 낮은 한국
외국 기업과 전략 제휴로 극복을”

요즘 세계 원전 시장을 휩쓰는 미국과 프랑스 업체는 하나같이 일본 기업과 관계가 있다. 미국 웨스팅하우스의 주인은 일본 도시바(東芝) 그룹이다. 히타치(日立)는 미국 GE와, 미쓰비시(三菱)중공업은 프랑스 아레바와 제휴했다.

일본은 원자력 운영·건설 기술은 물론 재처리 능력까지 두루 갖췄지만 원전의 독자 수출에는 한계가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일본 기업은 해외 원자력회사를 사들이거나 전략적 제휴를 하고 있는 것이다. 원전은 핵무기와 기술적으로 밀접하게 관련돼 있기 때문에 원천기술을 제대로 갖춘 나라가 많지 않고 기술의 공개나 이전도 거의 없다. 주요 선진국 기업이 원전 시장을 두고 각축을 벌이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미국·프랑스·러시아의 삼각 구도=원전을 자체적으로 건설·수출할 역량을 갖춘 국가는 미국, 프랑스·러시아·캐나다·일본 정도다. 이 중 동유럽과 옛 소련 국가 등에 영향력이 강한 러시아를 뺀 전 세계 상업용 원자로 시장은 미국(웨스팅하우스·GE)과 프랑스(아레바)가 사실상 양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미국은 원자력 관련 원천기술을 가장 많이 보유한 나라다. 보유 원자로도 129기로 가장 많다. 그러나 스리마일 원자력발전소 사고 이후 30여 년간 원자력발전소 추가 건설을 포기하면서 관련 산업 기반, 특히 부품기업이 많이 무너진 게 문제다. 그러나 석유 등 화석연료 값이 오르고 환경 문제가 부각되면서 새로 들어선 오바마 정부는 원전 기술에 대해 긍정적이다.

프랑스는 미국과 함께 원천기술·건설·수출 능력을 두루 갖췄다. 특히 가압경수로형(PWR)의 경우 프랑스의 아레바가 미국 웨스팅하우스와 함께 시장을 양분하고 있다.

러시아의 원자력산업은 원자력·핵 관련 최상위 기관인 연방원자력기구(로사톰) 산하에 있는 아톰 에네르고 프롬이 전담한다. 이 회사 산하의 원전 건설·수출 기업이 아톰 스트로이 엑스포트(ASE)다. ASE는 러시아 외에 이란·파키스탄·터키·영국 등에 원전을 수출했고 현재는 불가리아에 3세대 경수로를 건설 중이다.

◆전략적 제휴로 신흥시장 노려야=한국원자력연구원 백원필 박사는 “ 아직 한국 업체의 브랜드 인지도가 낮고 해외 원전을 직접 수출한 경험이 없는 게 문제”라며 “외국 기업과 전략적 제휴를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몇몇 핵심 기술을 갖지 못한 것도 한계다. 원자력연구원 박원석 사업개발부장은 “냉각기를 돌리는 펌프(RCP)나 운영 소프트웨어 등 일부 핵심 기술을 국산화하는 연구가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박 부장은 “중동·남미 등 수요는 있지만 가격 문제로 선진국 업체들의 관심이 적은 지역을 공략하면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중국 시장도 눈여겨볼 만하다. 2007년 5월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는 2030년까지 원전 설비용량을 160GW로 늘리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중국은 외국 기술을 도입, 최종적으로는 독자적인 설계·운영 능력을 갖출 계획이지만 당장 대규모 원전 건설이 잇따르고 있어 한국 기업으로서도 각종 부품 등의 진출 기회가 커질 것으로 보인다.



풀어야 할 과제는 핵심 기술 3~4개 아직 국산화 못 해

한국의 원자력 발전은 세계 5위 수준이라는 평가다. 원전 건설과 운영 기술도 거의 자립 단계에 와 있다. 원전 운영 30여 년 동안 축적한 노하우가 많기 때문이다. 세계 어느 나라에 수출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그러나 부품 단위가 아닌 원전 전체를 해외에 수출하려면 당장은 한계가 있다. 원전 설계 코드 등 중요한 핵심 기술 서너 개의 소유권이 여전히 미국 웨스팅하우스에 있기 때문이다. 현재는 한국이 해외에 원전을 수출하려면 웨스팅하우스의 허락을 받아야 가능하다. 웨스팅하우스는 일본 도시바에 합병된 업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원자력 전문가는 “원전 기술이 국내에서 보면 세계 최고 수준인 것 같지만 수출하기에는 2%가 부족한 게 현주소”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정부는 지식경제부 주도로 ‘부족한 2%’를 완전 국산화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앞으로 3~4년 안에 이 목표를 달성한다는 계획이다. 그렇게 되면 해외의 어떤 업체와도 겨뤄 볼 만하다는 얘기다.

자립하지 못한 것 중에는 원전 연료 생산의 전 공정 기술이 있다. 노태우 정부 때 ‘한반도 비핵화 선언’을 했기 때문에 원료 생산 첫 단계인 우라늄 농축을 국내에서는 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해외에 수출하기 위해 연료 생산 전 공정 기술을 이전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수조원의 수출 지원용 재원 마련도 걸림돌이다. 원전 수출을 할 때는 건설비의 대부분을 차관 형식이든 대출 형식이든 지원해 줄 수 있어야 한다. 미국이나 프랑스·일본·러시아 등과 경쟁하기 위한 필수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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