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사망 佛철학자 리오타르 업적과 생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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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21일 백혈병으로 사망한 장 프랑수아 리오타르는 '포스트모던' 이라는 말을 철학용어로 등록시킨 인물이다.79년에 출간된 저서 '포스트모던의 조건' 을 통해 포스트모더니즘의 대표적 이론가로 명성을 얻은 56년부터 10년간 사회주의 경향의 이론지인 '사회주의냐 야만이냐' 와 신문 '노동자의 힘' 의 편집위원을 지냈던 좌파 지식인이었다.

68년 유럽을 휩쓸었던 혁명적 학생운동이 실패하자 리오타르 등 프랑스의 많은 지식인들은 좌절과 회의 속에서 좌파와 지적 연계를 끊고 '신 (新) 철학' 이나 포스트모더니즘 등 새로운 사고를 시도하게 된다.이 단절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준 리오타르의 핵심적 메시지는 서구의 정치.철학을 지배해온 '보편적 인간해방' 등 '큰 이야기 (대서사)' 에 대한 저항이다.

과학주의에 바탕을 둔 서구의 합리주의를 비판함으로써 리오타르는 20세기의 야만을 넘어설 수 있다고 보았다.다양하고 이질적이면서도 위계 없이 병존하는 생활양식들에 바탕을 둔 '작은 이야기' 들을 통해 서구문명의 보편주의가 낳은 억압을 해체하자는 것이다.

이같은 논점을 둘러싸고 80년대 중반 독일 철학자이며 합리성의 옹호자인 위르겐 하버마스와 세 차례에 걸쳐 격렬한 논쟁을 벌였으며, 이를 계기로 서구 지성계가 '포스트모더니스트 - 모더니스트' 라는 이분법에 따라 재편되기도 했다.

김창호 학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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