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마트 왕국에 역풍 분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4면

'월마트 왕국'이 역풍에 휘말리고 있다. 미국에만 3600여개의 대형 할인점과 100만명의 직원을 두고 날로 덩치를 키우는 월마트는 '소매 유통업의 공룡'으로 통한다.

지난해 우리나라 연간 수출액보다 많은 2560억달러(약 300조원)의 매출을 올려 미국 경제잡지 포춘이 선정한 '세계 500대 기업'에서 3년 연속 정상을 지켰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던가. 미 민주당의 존 케리 대통령 후보까지 나서 월마트의 저임금 구조를 성토하는가 하면, 여직원에 대한 임금.인사 차별 논란으로 사상 최대 규모(원고 가능 인원 160여만명)의 집단소송에 휘말렸다. 신규 매장 후보지마다 지역 영세 상인들의 저항도 거세지고 있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FT) 등 세계 주요 언론들은 월마트가 위기를 어찌 타개해 나갈지 주목된다고 전했다.

◇거세지는 비판론=미국 아이오와 주립대의 경제학 교수였던 켄 스톤의 연구는 지역경제 파괴라는 주제로 월마트를 압박한다. 이 연구에 따르면 1980년대 중반 월마트가 이 주에 입점한 지 10년 만에 아이오와주 식료품점 가운데 절반, 컴퓨터 판매점의 45%, 남성복 매장의 75%가 문을 닫았다는 것이다. 소비자들은 좋은 제품을 싸게 살 수 있어 좋지만 중소 상인들의 기반은 속절없이 무너졌다.

영세상인만 고전한 게 아니다. 월마트와 같은 해(62년) 설립돼 89년 유통업계 왕좌에 오른 K마트는 월마트의 저가 전략에 맞서다 기력이 쇠진해 2002년 도산했다.

월마트가 엄청난 기세로 시장을 석권해가자 미국 내 상당수 카운티 당국은 매장 면적 제한 등 규제로 대응했지만 큰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근래엔 '월마트가 경제 전체적으로도 해로움을 더 많이 준다'는 비판론까지 등장했다. 월마트의 저가정책에 부응하려고 제조업체들은 공장을 노동력이 싼 나라로 옮길 수밖에 없어 고용감소→구매력 감소→경기불황의 악순환을 낳는다는 것이다.

크로거.세이프웨이 같은 미국 내 대형 수퍼마켓 체인들은 월마트의 비용절감에 대항해 직원 복지혜택을 줄이려다가 수만명 근로자들이 연대파업을 맞기도 했다.

◇경쟁력의 비결=FT는 월마트를 '미국 안의 또 다른 나라'라고 일컬었다.

차량 관련 소비지출을 제외하면 미국인들은 할인점에서 쓰는 돈의 8%를 월마트에 푼다. 전체 가구의 80%가 일년에 한번 이상 월마트에서 물건을 살 정도다. 컨설팅업체인 AT커니의 관계자는 "월마트의 놀라운 시장지배력은 투명한 영업관행과 탁월한 전략에서 비롯된다"고 말했다.

주방용기 업체인 뉴웰 러버메이드의 스티븐 셰이어 사장은 "월마트에 납품하면 마진은 적지만 리베이트라든가 광고협찬 같은 부수적 고민에서 해방된다"고 말했다.

'판매 연계 시스템'으로 월마트와 납품업체들은 재고.판매 예측 등에 관해 공동 전략을 세울 수 있다.

김준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