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사귀생 통어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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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면

<결승2국> ○·이세돌 9단 ●·쿵제 7단

제3보(19∼26)=이세돌 9단은 발랄하다. 상상력을 품고 물방울처럼 솟구치는 바둑돌들이 시원하다. 쿵제 7단도 고수지만 이세돌의 시원한 맛은 없다. 이 차이를 쿵제도 느끼고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99%의 노력과 1%의 영감’이라고 했지만 아무리 봐도 천재라는 건 만들어지는 게 아닌 것 같다.

그런 이세돌에게 초반은 갑갑한 무대일 수 있다. 수를 내려야 빈 땅에서 무슨 수가 나나. 그래서 조금 무리한 싸움이라도 마다하지 않다 보니 종종 초반부터 크게 고전하는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19는 축머리. 좌상의 정석이 끝났을 때부터 준비된 흑의 보너스다. 20으로 수비하자 21로 갈라친다. 상대의 강한 곳에 가까이 가지 말라는 기훈대로 철옹성 같은 상변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졌다. 그렇다고 ‘참고도’ 흑1로 바로 걸치면 12까지 좌변이 너무 방대해진다. 예전엔 일방가를 필패의 요인으로 봤고 사귀생 통어복이면 필승이라 했다. 따라서 ‘참고도’처럼 실리부터 차지한 뒤(이걸로 흑은 사귀생이다) A나 B로 삭감해 통어복(通魚腹)하면 필승이란 논리도 성립될 수 있다. 하나 이건 다 옛날 얘기다. 바둑이 변하고 중앙의 가치가 커지면서 사귀생 통어복이면 필패란 말까지 나온다. 23도 같은 맥락이다. C로 두 칸 벌리는 게 상식이었지만 지금은 D의 확실한 안정과 E의 중앙 진출을 맞보기로 한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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