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미쓰비시도쿄 - UFJ 그룹 합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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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일본의 미쓰비시도쿄(三菱東京)파이낸셜그룹과 UFJ그룹이 14일 합병을 추진키로 선언했다. 두 금융회사가 합치면 총 자산 188조엔(약 2000조원) 규모의 세계 최대은행이 탄생할 전망이다. 이렇게 되면 총자산 기준으로 세계 1,2위 은행을 일본이 차지하면서 전세계 금융산업 판도에 큰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UFJ그룹은 이날 임시 이사회를 열고 미쓰비시도쿄 측에 합병을 제의했으며, 미쓰비시도쿄그룹도 이를 받아들이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일본 금융청도 대형 은행 간 합병이 바람직하다는 판단에 따라 양 그룹의 합병을 적극 지원할 방침이다.

이에 따라 양 그룹은 통합지주회사 산하에 도쿄미쓰비시(東京三菱)은행.미쓰비시신탁은행.UFJ은행.UFJ신탁은행의 4은행 체제로 당분간 운영하되 1~2년 안에 상업은행과 신탁은행을 묶어 한곳씩으로 재편할 방침이다. 또 산하의 증권.보험회사도 통합할 계획이다.

◇합병 배경=직접적 계기는 UFJ그룹의 경영 악화에 따른 것이다. UFJ는 지난 3월 결산에서 4000억엔의 대규모 적자를 기록했다. 부실채권도 4대 대형은행 중 가장 많은 3조9000억엔이다.

그러나 내막을 보면 '금융개혁의 검객'으로 불리는 다케나카 헤이조(竹中平藏)금융상의 '작품'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다케나카 금융상은 최근까지도 "일본에서 대형은행은 2~3개가 적당하다"는 입장을 견지해 왔다. 금융청은 이에 따라 부실채권을 줄이지 못한 UFJ에 대해 엄격한 회계기준을 들이대며 압박을 가해 왔다. 지난 6월에는 "부실채권을 2조3000억엔으로 줄이라"는 지시를 내렸다.

또 금융청의 검사를 기피했다는 이유로 전 UFJ 경영진을 전원 형사 고발할 뜻까지 비쳐왔다. 사실상 "이대로 가면 쓰러지니 다른 획기적 방안을 모색하라"는 사인을 계속 보낸 셈이다. UFJ는 결국 단독생존을 포기하고 점포망이나 고객기반이 겹치지 않는 미쓰비시도쿄에 '합병 요청'을 하게 된 것이다.

미쓰비시도쿄가 거액의 부실채권을 떠안고 있는 UFJ를 덥석 받아들인 데도 이유가 있다. 일본의 경기가 빠른 속도로 회복되고 있어 앞으로 영업기반을 넓혀 수익성을 확보하지 못하면 공격적 경영을 하는 외자계 금융기관에 밀릴 수밖에 없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미쓰비시도쿄는 개인 및 소매영업에서 상대적으로 취약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파급효과=1990년대 말부터 진행된 일본 대형은행의 재편작업은 미쓰비시도쿄-UFJ, 미즈호 파이낸셜그룹, 미쓰이스미토모(三井住友)의 '3두 체제'로 사실상 마무리됐다. 90년대 초 23개나 되던 대형은행이 버블 경제의 붕괴와 더불어 세곳으로 정리된 것이다. 그만큼 경쟁력은 커졌다.

또 일본 경제 회복의 걸림돌로 지적되던 부실채권 처리가 일단락됐다는 의미도 있다. 4대 대형은행 중 가장 골치를 썩이던 UFJ가 재무구조가 탄탄한 미쓰비시도쿄와 손을 잡게 됨으로써 부실채권 처리는 사실상 끝난 셈이다.

일본 은행끼리 세계 1, 2위를 다투고 있으나 덩치(자산규모) 자랑일 뿐이라는 비판적 시각도 있다. 요즘에는 자산규모보다 수익성이 반영된 시가총액을 중시하는 데다 미국.유럽계 은행들이 여전히 금융기법에서 일본은행들을 앞서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두 은행의 합병 방침에 따라 미국의 씨티은행도 도이체방크 인수에 더욱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이는 등 전 세계적으로 은행의 대형화 추세는 급물살을 탈 가능성이 커졌다.

도쿄=김현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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