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 숫자감소·약골화 수난조짐…외국 남아출산율 하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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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고개숙인 남성은 생물학의 세계에서도 예외가 아닌 모양. 남성수난시대를 예고하는 조짐이 세계 곳곳에서 나타나 관심을 끌고 있다.미국의학협회지는 최근 미 워싱턴에 본부를 두고 있는 세계자원연구소의 연구결과를 인용, 남아출산율이 느리지만 명확한 추세로 감소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70년부터 90년까지 20년간 미국과 캐나다를 비롯한 선진 4개국의 출생성비를 조사한 결과 이들 나라에서 과거에 비해 남아출산율이 꾸준히 감소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진것. 줄어든 비율은 캐나다의 경우 1천명당 2.2명, 미국은 1명꼴. 얼핏 미미한 비율로 보이지만 인구 전체로 보면 미국의 경우 3만 8천명, 캐나다의 경우 8천 6백명이 남아 대신 여아로 태어났다는 결론이다.

정자수 격감사태는 남성수난시대를 알리는 또 하나의 증거. 영국의 의학전문지 브리티시메디컬저널지는 97년 핀란드 남성들을 대상으로한 조사에서 81년부터 91년까지 10년간 정상적인 정자를 만들어내는 남성의 비율이 56.4%에서 26.9%로 절반 가까이 떨어졌다고 발표한 바 있다.프랑스 남성의 경우 숫자도 줄어들어 73년부터 92년까지 매년 2%꼴로 정자수가 감소했으며 고환의 크기도 81년 18.9g에서 91년 17.9g으로 작아졌다는 것. 이때문에 창설이래 산아제한을 주창해왔던 유엔은 사상최초로 정자수 감소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국제회의를 개최하기도 했다.

남성수난시대에 대한 전문가들의 설명은 크게 두가지다.하나는 여성이 남성보다 생물학적 우위에 있기 때문이란 것. 예컨대 선진국들의 평균수명은 여성이 남성보다 6년 정도 길다.

태어날 때부터 남성과 여성간 구분이 명확치않은 반음양 (半陰陽) 질환의 경우 유전형질이 XY로 남성이라 할지라도 외부성기는 반드시 여성으로 만들어준다.전문가들은 "남성의 성기가 여성보다 훨씬 정교한 반면 취약하므로 외과적 복원이 어렵기 때문" 이라고 말한다.

두번째 설명은 늘어나고 있는 환경오염. 미국의학협회의 데브라 데이비스박사는 "환경오염으로 인한 생태계의 변화에 남성을 결정짓는 Y염색체 정자가 특히 취약한 탓" 으로 해석한다.

남성을 핍박하는 유해환경으론 각종 호르몬제와 피임약의 남용, 갈수록 고령화되는 아버지의 연령, 간염과 악성림프종같은 만성소모성 질환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제련공장이나 살충제, 납과 같은 유기용제 제조공장도 남성의 탄생을 억압하는 유해환경. 이처럼 남아출산율의 감소로 애태우고 있는 선진국과 거꾸로 우리나라는 남아를 낳기 위해 인공중절수술을 불사함으로써 인위적으로 남초 (男超) 현상을 빚고 있는 실정. 그러나 국내 남성도 안심하긴 이르다.

이미 97년 경남 양산의 모전자회사의 유기용제 취급 근로자에게 집단으로 불임환자가 발생해 학계를 긴장시킨 적도 있었을 정도. 영동세브란스병원 비뇨기과 최형기교수는 "아직 정확한 국내통계는 없지만 기형정자 출현율의 증가와 정자수 감소는 임상에서 피부로 느끼는 현상" 이라며 "정자건강을 해치는 환경공해에 대한 체계화된 연구가 필요하다" 고 강조했다.

홍혜걸 전문기자.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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