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한 MB, 침묵한 YS, 흐느낀 DJ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8면

이명박 대통령과 전직 대통령 등이 29일 경복궁 흥례문 앞에서 진행된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에 참석해 묵념하고 있다. 왼쪽부터 노 전 대통령 부인 권양숙 여사, 한명숙·한승수 공동장의위원장, 이 대통령, 김윤옥 여사,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 [사진공동취재단]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이 열린 29일 서울 경복궁 앞뜰에는 이명박 대통령과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을 포함한 전·현직 정치인들이 운집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과 와병 중인 노태우 전 대통령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전 전 대통령은 전날인 28일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서 전립선 수술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전 전 대통령은 이날 “같은 전직 대통령 입장에서 고인의 명복을 빌고 유족에게도 애도의 뜻을 표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영결식장엔 김형오 국회의장과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 정세균 민주당 대표, 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 민주노동당 강기갑 대표, 창조한국당 문국현 대표 등 여야 지도부와 당연직 장의위원으로 위촉된 국회의원 200여 명이 참석했다. 김원기 전 국회의장을 포함해 노 전 대통령 재임 기간이던 17대 국회의원 155명도 함께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별도의 추도사를 내지 않았다. 귀빈석 맨 앞줄 한승수 공동 장의위원장 옆자리에 앉은 이 대통령은 영결식 내내 침통한 표정이었다. 기독교 장로인 그는 종교 행사가 이어지는 동안에는 고개를 숙인 채 두 손을 모아 기도를 올리기도 했다. 13대 총선에서 노 전 대통령을 정치에 입문시켰던 김영삼 전 대통령은 영결식 내내 굳은 표정으로 침묵을 지켰다.

거동이 불편해 휠체어를 타고 영결식에 참석한 김대중 전 대통령은 부인 이희호 여사와 헌화한 뒤 유족석의 권양숙 여사의 손을 잡고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권 여사 옆에 앉아 있던 아들 건호씨와 딸 정연씨 내외, 한명숙 전 총리도 일어나 눈물을 흘렸다.

한나라당은 이날 모든 정치 일정을 중단하고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 가는 길을 애도했다. 박희태 대표를 비롯한 당 지도부와 소속 의원 등 100여 명은 이날 오전 45인승 버스 3대에 분승해 영결식에 단체로 참석했다. 박근혜 전 대표를 비롯한 일부 중진 의원들은 별도로 승용차 편으로 영결식장으로 이동하기도 했다. 윤상현 대변인은 “노 전 대통령께서 ‘삶과 죽음이 하나’라시며 서로 미워하고, 반목하는 것이 아니라 용서하고 화합하라는 유지를 남기셨다”며 “노 전 대통령의 명복을 빌며, 평안한 영면을 기원한다”고 말했다. 이상득 의원은 영결식 후 “이렇게 불행한 일이 다시 있어서는 안 된다”며 “살아남은 사람들이 이번 일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전날 봉하마을로 내려가 밤을 새운 민주당 지도부는 이날 오전 소속 의원들과 함께 영결식에 참석했다. 이어 서울광장에서 열린 노제에도 자리를 같이했다. 노영민 대변인은 추모 논평에서 “더 나은 미래를 꿈꾸었던 위대한 지도자를 잃었다”며 “우리는 노 전 대통령을 결코 잊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는 영결식이 끝난 뒤 운구 행렬에 섞여 노제가 열린 서울광장까지 말없이 걸었다.

이날 영결식에는 후쿠다 야스오 전 일본 총리, 캐슬린 스티븐스 주한 미국 대사와 알렉스 아비주 미 국무부 동아태 부차관보 등 외교사절들이 참석했다.

정효식·임장혁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