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아라리 난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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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그때, 버려진 어망들을 비켜가던 철규가 말했다 "그런데 우린 무척 다행스럽고 즐겁게 살고 있는 사람들이란 생각이 드는군. " "우리가요? 밤11시에 방파제를 서성거리고 있는 우리가요?" "며칠 전에 우연히 장터 어물전 바닥에서 뒹굴고 있는 신문지를 주워 본 일이 있었어. 그 신문 일면에 커다란 컬러 사진 한 장이 게재되어 있었어. 직장에서나 가정에서 해고당하고 내쫓김을 당한 수십명의 사회적 망명자들이 서울역 구내에 설치된 간이의자에 줄지어 앉아 새우잠을 자고 있는 장면이었어. 흡사 오늘날 가장들이 겪고 있는 좌절과 고통이 이것입니다 하고 사열을 받고 있는 것 같아서 바라보고 있을수록 쓸쓸한 영상이었지. 나와도 무관하지 않은 동병상련이어서 자연 오래 들여다봐지더군. 매우 착잡했었지. 지난날에 그들은 물론 한 가정의 대들보였었고 걸어다니는 보증수표였잖아. 물리적으로는 역대합실이 밤중에도 춥지 않다는 이유가 컸었겠지만, 그 많은 사람들이 하필이면, 서울역 대합실을 찾아와 노숙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 운동의 상태를 언제든지 지속시켜야 한다는 관성 (慣性) 의 중압감 때문에 어디든 떠나갈 수 있는 것이 가능한 서울역까지 나갔던 사람들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었어. 운동해야 한다는 관성에 떠밀려 그곳까지 나오긴 했는데, 그러나 막상 갈곳이 없다는 현실을 깨닫게 되면서 관성에 대한 대항력 (對抗力) 을 잃어버린 자신을 발견하지 않았을까. 저수지에 갇혀 부유하는 물이끼들처럼 갈곳을 읽고 정지되어 있는 그들은 그래서 나무 그늘에 앉아 졸고 있는 노인들의 모습보다 더욱 처량해 보였던 것이 아닐까. 대항력을 잃어버렸다면, 아내로부터 구박당하고 자식들로부터도 꼴같잖은 아버지로 푸대접받을 테니 망명자들처럼 도회지의 그늘속만 찾아서 떠돌 수밖에. 무능한 가장으로 살기보다는 찬 바람속에서 떨더라도 가족들의 눈길과 멀리 떨어져 있는 게 마음 편하다는 생각들 하고 있겠지. 그런데 그들과 조금도 다를 바 없이 궁핍과 상실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 두 사람은 그들이 잃어버렸다고 생각하고 있는 길을 발견하고 서울을 과감히 떠나올 수 있었고, 지금은 바닷가 방파제를 거닐면서 인생을 이야기할 수 있는 여유까지 누리고 있잖아. 이걸 즐거운 인생이라고 말해서 무리가 있을까?" "생각하기 나름이라는 뜻이군요. 그래요. 즐거운 인생이라는 말씀보다 선생님 무심코 하신 우리라는 말이 제겐 더 즐겁게 들렸네요. 모두가 제각각인 요사이에 우리란 말도 얼마나 귀한 말씀인가요. 봉환씨는 제각각이란 말을 시시마끔이라고 하데요. " "그사람. 사투리가 너무 심해서 어떤땐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도대체 알아듣지도 못하면서 무안 탈까 봐서 대충 고개만 끄떡일 때도 있어. 객지생활 하면서 장애도 많이 겪었을 텐데 고칠 엄두조차 않았던가봐. 변씨도 고통이 심했던 모양이야. 진부장 파장 무렵이었던가 변씨가 아주 툭 털어놓고 면박을 주더군. 이사람아, 주책없는 놈이 장에 말좃 지고 가더라고 경상도 좋았던 시절 지난게 언젠데 아직도 장터 바닥에서 경상도 사투리를 배짱좋게 쓰고 있나. 사람이 다소 모자란 구석이 있기로서니 시절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다는 눈치쯤은 짐작하고 살아야 처세도 손쉽고 잇속을 차릴 수 있다고 가차없이 쥐어박더군. 그런데 가만히 듣고만 있을 줄 알았던 봉환이가 뭐랬는지 알아? 행님요. 조상님이 물려준 남의 사투리 헐뜯지 말고 시늉만 하다 두고온 섰다판에나 가소. 좃하고 화투판은 만질수록 커진다 캤으이 거그에 잇속이 있을 끼라요. 그렇게 맞받아 치더라구. " 승희는 웃다 말고 두 손가락으로 귀를 막고 서 있었다.

그리고 눈을 곱게 흘기며 말했다.

"너무 놀란 거 있죠. 선생님 입에서도 그런 이상한 말들이 거침없이 흘러나올 줄 누가 알았겠어요. 불과 닷새 동안에 그렇게 변할 수도 있어요?"

<김주영 대하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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