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오바마 대북정책 입안’ 플레이크 맨스필드재단 사무총장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4면

미국내 한반도 전문가인 고든 플레이크(42) 맨스필드 재단 사무총장은 27일(현지시간) “북한의 핵실험등 도발적 행동에도 불구하고, 외교적 해결 가능성을 열어놓고 관련 지역의 국가들과 공동 보조를 취한다는 오바마 정부의 정책 기조는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날 중앙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북한이 국제적 협박 수위를 더 높여갈 경 우 중국과 러시아가 한국ㆍ미국ㆍ일본과 같은 입장을 취할 가능성이 커질 것”이라며 “이를 인식하고 있는 북한이 군사적 행동까지 나서지는 않을 것이며, 시간을 좀 주면 협상의 단초가 마련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플레이크 사무총장은 지난해 오바마 대선캠프가 공식 발표한 아시아 관련 정책의 한반도분야 초기 입안자다. 미국내 한반도 전문 연구기관인 애틀랜틱카운슬에서 대북한 분쟁 해결 프로젝트를 담당하기도 했다.다음은 일문일답.

- 북한이 국제사회를 향해 도발적 행동을 거듭하고 있는데.

“핵 보유국으로 인정받는 게 목적이다. 그런데 왜 하필 지금이냐? 북한내 정치적 불안과 연결된 것으로 보인다. 김정일 정권이 후계체제로 바뀔 준비를 하면서 보다 좋은 환경을 만드려는 것이다.”

- 결국 미국의 대응이 중요한 게 아닌가. 지난해 대선때 오바마 선거 캠프에서 일한 경험으로 볼 때 오바마 대통령이 어떤 선택을 할 것으로 보나?

“오바마 정부는 두 가지 원칙을 절대 놓지 않을 것이다. 첫째, 외교(대화와 협상) 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계속 강조할 것이다. 북한의 행위에 대응하면서도 절대로 외교적 노력을 포기한다는 말은 하지 않고 가능성을 열어둘 것이다. 둘째, 보다 중요한 원칙으로, 어떤 대응도 반드시 동맹국, 관련 국가들과 협의를 통해 공동 대응 형태를 띨 거라는 점이다. 오바마는 이같이 ‘지역적 접근’(regional approach) 을 활용할 것이며, 단독으로 입장을 정하지는 않을 것이다.사실 그래서 오바마의 입장만을 묻는 것은 제대로 된 질문이 아니다.”

- 상황과 원칙이 조지 W 부시 전 행정부 때와는 어떻게 다른가.

“2006년 북한의 첫 핵실험때와 지금의 핵실험 상황은 큰 차이가 있다. 2006년의 경우 주요 당사국들 사이에서 북한을 ‘악의 축’으로 몰아부치며 협상을 거부하려는 부시와 체니 부통령의 전략때문에 핵실험이 발생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이때문에 부시 행정부는 당시 국내외에서 압력을 크게 받았다.반면 지금은 180도 상황이 다르다. 북한이 올해들어 핵 실험을 한데 대해 오바마 정부 탓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한명도 없다.

두번째로 한국의 입장이 변했다. 2006년 노무현 정부는 북한 핵실험에 대해 지나치게 강한 반응을 나타내는 걸 꺼려 했다. 그래서 한ㆍ미ㆍ일 공동안을 만들기가 힘들었다.지금 이명박 정부에선 한ㆍ미ㆍ일 공조가 훨씬 수월해졌다.

3국이 힘을 합해 중국과 러시아에게 함께 가자고 하기 쉬워진 것이다. 이것은 중요한 차이다.”

- 오바마 정부가 북한과의 대화 의지를 수차례 밝혔는데도 북한은 요지부동이다. 오바마의 대북 정책기조가 변할 가능성은 없나?

“앞서 말한 두가지 원칙은 지난해 대선 캠페인 때부터 유지돼온 것이다. 지금도 마찬가지이며,바꿀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북한의 도발적 행위가 계속 되곤 있지만 한ㆍ미ㆍ일 ㆍ중ㆍ러 관련 5개국이 공동 대응 기조를 취하고 있다는 점에서 보면 (오바마 정책 기조가) 성공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북핵을 둘러싸고 위기감이 점차 고조되는 상황이다. 한국의 PSI(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 참여 선언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제개 움직임등으로 북한의 반응이 더욱 거칠어지고 있는데.

“위기 상황이 보다 고조되기는 하지만 나는 제한된 범위에서의 고조에 머물 것으로 예상한다. 중국과 러시아가 한ㆍ미ㆍ일과 일치된 입장을 가지면 가질 수록 북한의 도발적 행동은 미국 뿐 아니라 중국ㆍ러시아와도 부딪치는 일이 된다. 북한의 협박 강도가 높아질 수록 5개국의 입장은 더 가까와 질 것이다.”

- 그렇다면 북한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가?

“북한에 시간을 좀 줘야 한다. 그러면 지금보다는 조용해 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북한은 자기들이 좀더 요란하게 나갈 경우 5개국의 공동 입장이 보다 강화될 것이라는 현실을 이해하고 있다. 그래서 말로 협박하는데 그치지 군사적 행동으로 치다르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북한 문제에서 5개국의 대응이 분리되는 게 가장 위험하다. 그런 점에서 현 오바마 정부는 비교적 좋은 입장에 있다고 생각한다.”

- 북한에게 시간을 준다는 의미가 무엇인가?

“북한의 그릇된 행동에 벌을 주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급하게 ‘이런 걸 줄 테니 협상장 나와라’ 하지 말고 유엔 안보리 차원에서 차분하게 대응하면서 ‘대화하고 싶으면 언제는 나오라’는 입장을 견지하는 것이다. 중국과 러시아도 동의한 안보리 제재안을 조용하고 밀도있게 추진하면 북한도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 시간을 주면 북한은 협상의 틀을 준비할 것이고 협상의 단초가 마련될 수 있다.”

- 6자회담의 앞날을 놓고 비관적인 전망이 많다. 어떻게 보는가.

“앞으로 국면이 전환돼 어떤 형식의 협상 틀이 만들어질지를 예측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6자회담의 기본 목적이 무언가? 협상 자체 보다 북한을 제외한 5개국이 보조를 맞춰 공동대응하자는 거 아니었나. 이같은 취지는 지금도 유엔 안보리에서 유지되고 있다. 6자회담이 아니더라도 기본 목적은 성취되고 있다.”

워싱턴=김정욱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