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께 가슴속으로 감사” … 권 여사, 두 차례 90도 인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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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을 하루 앞둔 28일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에는 야영 텐트가 하나둘씩 쳐지고 있다. 29일 오전 5시 열리는 노 전 대통령의 발인을 보려는 조문객들이다. 봉하마을과 가까운 진영읍내 숙박업소의 방은 이미 동이 났다. 더운 날씨에도 추모 행렬은 분향소에서 마을 입구까지 2㎞ 구간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28일 오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시신을 운구할 차량이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 빈소로 들어가고 있다. [뉴시스]


지역과 남녀노소, 종교를 가리지 않은 조문객들이 24시간 전국에서 몰려들었다. 전세버스를 이용해 오는 조문객도 많았다. 조문 대기 시간이 서너 시간씩 걸리지만 짜증을 내는 사람은 없었다.

자녀를 데리고 부산에서 온 김상호(45)씨는 “서민 대통령이지만 재임 당시에는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이 가슴에 걸렸다”고 말했다.

23일 서거 후 빈소가 마련된 봉하마을에는 28일까지 6일간 100만여 명의 추모객이 찾은 것으로 노 전 대통령 국민장 장의위원회는 추산했다. 노 전 대통령의 시신이 봉하마을에 도착한 것은 23일 오후 6시30분이었다.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회원 등 지지자와 친척, 마을 주민 등 1만여 명이 마을 광장에 천막 30여 개를 치고 임시 분향소를 설치한 뒤 오후 10시부터 조문객을 받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봉하마을 분향소에 놓인 위패. ‘신원적 제16대 대통령 노무현 영가’라고 불교식으로 적혀 있다. ‘신원적’은 갓 진리와 극락세계로 가신 분이라는 뜻이고, ‘영가’ 역시 돌아가신 고인을 칭한다.  [김해=사진공동취재단]

이틀째인 24일에는 마을회관 앞 광장에 공식 분향소가 차려졌다. 20여만 명이 찾아 영정 앞에 국화를 올렸다. 25일은 섭씨 29도의 뙤약볕이 내리쬐는 평일이었지만 20만 명 이상이 몰려들었다. 이날 전국 80여 곳에 분향소가 설치됐지만 봉하마을 조문객의 수는 더 늘어났다. 26일과 27일에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조문객이 몰려 마을 인근 5㎞ 구간의 교통이 마비되다시피 했다.

27일 마을 진입로에는 만장(輓章) 500개가 걸렸다. 만장은 ‘손자 자전거에 태우고 도시던 모습’ ‘꽃잎처럼 흘러 흘러 그대 잘 가라’ ‘자연의 한 조각인 것을’ 등 생전 모습과 유서 내용 등 다양했다.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2, 3일 동안은 슬픔에 젖은 노사모 회원들과 극렬 지지자들이 일부 정치인의 조문을 막고 특정 언론사 기자를 쫓아내는 등 마을 분위기가 엉망이었다. 그러나 자원봉사자들이 맹활약하면서 이들의 활동은 위축되고 마을은 점차 정상을 찾아갔다. 봉하마을 주민과 인근 마을 부녀회, 의용소방대, 지지자 등으로 구성된 자원봉사자 500여 명은 분향소 주변 곳곳에 배치돼 궂은일을 도맡았다. 하지만 분향소 주변에 일부 단체가 현 정부의 정책을 비난하는 홍보판 20여 개를 세우고 펼침막을 내걸어 조문객들이 눈살을 찌푸리기도 했다.

28일 오전에는 권양숙 여사가 분향소에 직접 나와 조문객과 자원봉사자들에게 고개 숙여 감사 인사를 했다. 검은색 상복 차림을 한 권 여사는 조문객과 자원봉사자들을 향해 두 차례나 허리를 90도 가까이 숙였다. 노 전 대통령 서거 후 권 여사가 분향소에 직접 모습을 나타낸 것은 처음이었다. 권 여사는 한명숙 공동장의위원장을 통해 "가슴속으로 감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봉하마을 6일’은 진기록을 남겼다. 조문객이 먹는 쇠고기국밥을 끓이는 데 80㎏짜리 쌀 480가마(57만여 명분)가 소비됐다. 쇠고기도 하루 평균 800㎏ 이상이 들어갔다. 황소 1마리 무게와 맞먹는 양이다. 김치 300㎏과 수박 500여 개, 생수 6만 병, 떡 10t 등이 하루를 채 버티지 못했다. 국화도 하루 평균 10여만 송이씩 60여만 송이가 쓰였지만 조문객을 감당하지 못해 깨끗한 것을 골라 재활용하기도 했다.

김해=김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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