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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모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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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댄 브라운의 『천사와 악마』와 움베르토 에코의 『푸코의 진자』에는 비밀 결사 조직인 프리메이슨이 등장한다. 마이클 크라이튼의 『공포의 제국』은 기후변화의 위기감을 고조시키려고 일부러 빙하를 녹이는 극단적 환경주의자를 다루고 있다.

권력·재산·명예를 지키기 위해 살인도 서슴지 않는 조직의 음모는 소설의 흔한 소재다. 권력 집단에 의혹의 눈길을 보내는 음모론은 현실 세계에서도 종종 등장한다. 지난해 2월 영국 이코노미스트지는 인터넷 검색엔진 구글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음모론 10가지를 골라 소개했다. 2001년 9·11 테러의 배후가 미국 정부라는 것, ‘로큰롤의 황제’ 엘비스 프레슬리가 아직도 살아 있다는 것, 공기가 없는 달에서 성조기가 펄럭인 것으로 봐서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은 거짓이라는 것 등이다.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의 내용대로 예수가 마리아 막달레나와 결혼해 아이를 뒀다는 것도 있다.

음모론 중 대표적인 것은 1963년 11월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의 암살이다. 리 하비 오스왈드의 단독 범행으로 밝혀졌지만 오스왈드가 다시 잭 러비에게 살해되면서 케네디 암살 배후에 마피아 혹은 미 중앙정보국(CIA), 연방수사국(FBI), 소련의 국가보안위원회(KGB), 피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전 의장이 있다는 음모론이 끊임없이 제기됐다. 97년 8월 영국의 다이애나 전 왕세자비의 교통사고 사망도 10년 넘게 음모론에 휩싸였다. 여왕의 부군인 필립공이 영국 첩보국인 MI6를 동원해 사고를 일으켰다는 것이다.

음모론이 정설이 되지 못하고 음모론으로 그치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단순 명료한 설명이 있는데도 구태여 복잡한 가정을 세워 설명하려 든다는 점, 논리적이지 않다는 점, 반증 가능성이 막혀 있어 과학적이지 못하다는 점 등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놓고 음모론이 떠돌고 있다. 경호관의 진술 번복과 미진한 경찰 수사로 의문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탓이다. 시민들로서는 갑작스러운 투신 자살을 사실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탓도 있다. 발견된 유서 등으로 봐서 투신이라는 핵심 사실이 뒤바뀔 것 같지는 않다.

음모론 제기가 진실 규명의 촉매 역할을 할 수는 있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 내용을 시시콜콜 공개했던 검찰이 눈총을 받는 상황에서 근거 없는 음모론을 퍼뜨리는 것 역시 고인을 위한 일이 될 수는 없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