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일의 인사이드 피치] 165. 진정한 스타가 되려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7면

누구나 한번쯤 자기의 우상이 신비스럽고 특별할 것이라는 상상을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예컨대 초등학교 선생님을 마음속에 간직했을 때 그 선생님은 화장실에도 가지 않을 것이라고 여겼던 것처럼.

프로야구가 처음 생긴 1982년 최고 스타는 단연 박철순(당시 OB베어스)이었다. 본토 미국 야구를 경험했다는 그럴싸한 배경에다 시원시원한 투구 폼까지, 그는 완벽했다. 야구는 또 얼마나 잘했나. 자연스레 '인사이드 피치'의 우상이 됐다.

그러던 어느 날 야구장에서 그와 마주쳤다. 우연치고는 기막히게 주변에 아무도 없었다. 우상과 마주서다니…. 가슴이 방망이질 치기 시작했다. 한걸음에 달려가 그에게 말을 걸었다.

"박철순 선수, 요즘 컨디션 좋죠?" "…."

"내일 꼭 이기세요!" "…."

"박철순 파이팅!" "…."

이런, 메아리가 없었다. 그는 바쁜 걸음걸이로 '휙'하고 어디론가 들어가 버렸다. 그 뒷모습을 보면서 그에 대한 이제까지의 내 생각이 환상일지 모른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주 강하게. 그랬다. 그 순간 이후 그는 신비스러운 우상에서 그냥 뛰어난 야구선수로 미끄럼을 타고 자리를 옮겼다.

그 사건 이후 23년째 다른 우상을 만들지 못했다. 매력있는 선수가 없어서가 아니었다. 누군가를 우상으로 삼았다가 그 애절함이 환상에 지나지 않았다는 충격을 또다시 겪기 두려워서였다.

그 과정에서 생긴 의문이 있다. '왜 우리의 우상, 우리의 수퍼스타들은 운동에만 열중하고 운동만 잘할까'하는 것이다(물론 전부 그렇지는 않다. 운동선수 출신으로 다른 쪽에서 훌륭한 일을 하고 있는 분들께 죄송하다. 그러나 대부분의 운동선수가 그렇다는 데는 별 이의가 없을 것이다).

우리 운동선수가 가치관이 형성되는 청소년기 때 다른 쪽에 관심을 갖지 못하도록 강요당하는 부분이 그들이 운동에만 전념하는 가장 큰 이유라고 본다. 그러나 자신이 지닌 잠재력과 개성, 그리고 소질을 개발하면 다른 가능성을 열 수 있는 여지가 얼마든지 있다. 98년 프랑스 월드컵 조직위원장으로 행정가이자 외교관의 능력을 훌륭히 보여준 축구선수 출신 미셸 플라티니, 역시 98년 일본 가나가와현 쓰지시 시장에 당선된 윈드서핑선수 출신 나카시마, 복서 출신으로 남아프리카 대통령까지 지낸 만델라….

이번 주말엔 별들의 잔치 올스타전이 열린다. 정말 별이 되고 싶다면 던지고 치고 받고 뛰는 것 말고 인간적으로, 사회적으로 빛을 보여줘야 한다. 운동장에서의 별뿐 아니라 인생에서의 별. 그게 '진짜' 스타다.

이태일 야구전문기자

◇알립니다=인사이드 피치는 필자의 해외연수 관계로 당분간 쉽니다. 9월 이후 '인사이드 피치 인 아메리카'로 다시 연재합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