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런 일 꿈에도 생각 못 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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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노무현 상이 선택한 길이니까 존중하고 싶다. 가족분들이 하루빨리 평안을 되찾았으면 하는 마음 뿐이다.”

2003년 6월 일본을 방문한 노무현 전 대통령을 도쿄 영빈관에서 만난 이노우에 요시오. 2006년 4월에는 청와대로 초대받았다. [사진제공=이노우에 요시오]

1980년대초 부산 앞바다에서 만나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이노우에 요시오. 왼쪽에서 두번째가 노무현 전 대통령, 가운데가 이노우에다. 사진제공=이노우에 요시오

2006년 청와대에서 만난 노무현 대통령과 이노우에 내외. 사진제공=이노우에 요시오

일본에서 가장 큰 내륙 호수인 시가(滋賀)현 비와코(琵琶湖)에서 요트스쿨 ‘BSC 워터스포츠센터’를 운영하고 있는 이노우에 요시오(井上良夫ㆍ58)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친구다. 1983년 요트클럽 회원과 강사로 인연을 맺은 뒤 26년째 우정을 이어왔다. 자신의 스포츠센터에 노무현 기념관을 마련할 정도로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애정이 많은 사람이다. 7년전 대선 당시 ‘호화요트클럽 회원’ 논란이 불거졌을때 기자의 인터뷰 요청에 “노상에게 조금이라도 누가 될 수 있는 일은 하지 않겠다”며 거절했다. 이번에도 “한국과 일본 언론들의 취재요청이 있었지만 한국정치에 대한 비판으로 비칠까 고사했다”고 했다. 그런 그를 26일 전화로 어렵사리 인터뷰했다.

-노 전 대통령 서거 소식을 접한 심정은.
“최근 언론보도 등을 통해 많이 힘들 것이란 예상은 했지만 이런 일이 있을 줄 꿈에도 생각 못했다. 그래도 마지막 인사는 해야겠기에 토요일 후쿠오카(福岡)에서 배를 타고 김해 봉하마을에 다녀왔다. 마을회관에 차려진 영정사진 앞에 헌화하면서 26년간 내게 준 용기와 함께 나눈 우정에 대한 감사를 올렸다. 희망의 별이 떨어진 느낌이다.”

-노 전 대통령과의 인연은.
“1983년 변호사였던 그가 부산의 요트클럽 회원 10명과 함께 비와코에 요트를 배우러 왔다. 부산과 비와코의 요트클럽이 82년부터 매년 한차례씩 친선교류를 하고 있다. 그의 비와코 방문은 그때가 마지막이었지만 국회의원이 되기전인 87년까지는 친선교류때 부산에서 만나곤 했다.”

-대통령이 된 뒤에도 만남이 이어진 걸로 아는데.
“대선 전날 한국에 가서 개표상황을 지켜봤다. 당선이 확정된 뒤 ‘한일관계에 힘쓰고 서민을 위하는 대통령이 되시라’는 편지를 선거캠프에 전달하고 돌아왔다. 그리고 2003년 6월 취임 후 첫 방일때 내가 막무가내로 영빈관으로 찾아간 적이 있다. 주일 한국대사관에 면담을 요청했으나 ‘어렵다’는 답변을 듣고 ‘꼭 대통령 본인에게 물어봐달라’며 도쿄로 향했다. 노 대통령은 반갑게 맞아줬고, 당초 10분으로 잡혀있던 면담시간이 늘어지면서 그날 만찬은 예정보다 19분이나 늦게 시작됐다. 2006년 4월에는 우리 부부를 초대해줘 청와대에서 만났다.”

-노 전 대통령은 어떤 사람이었나.
“성장과정도 그렇고 정치인생에서 항상 고독했다지만 내게는 농담 잘하고 재치있는 친구였다. 83년 요트를 지도했을때는 일정이 너무 빡빡하다며 투정을 부리고는 하루종일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위를 벌였다. 청와대 방문때는 아내가 준비해간 꽃다발을 권양숙 여사께 드리자 ‘내건 왜 없냐’며 따지는 바람에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누구에게나 격이 없고 친근한 그가 좋았다. 평소 정치 이야기를 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힘있는 말과 행동은 모든 사람에게 용기를 줬다. 남녀노소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친근한 정치를 했다고 생각한다. 난 한국의 정치상황은 잘 알지도 못하고 의혹사건의 진실을 알지도 못한다. 그의 업적은 역사가 평가해줄 것이라 믿는다.”

-BSC스포츠센터에 노무현기념관을 마련한 배경은.
“그와의 인연을 기록으로 남기려고 그의 사인과 사진, 편지 등 각종 흔적과 자료들을 모아 2003년 6월 스포츠센터 2층에 40㎡넓이의 기념관을 꾸몄다. 이를 계기로 매년 여름 한일 청소년 공동캠프를 열고 있다. 우리 두 사람의 우정이 한일관계 발전에 작음 도움이 됐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마지막으로 노 전 대통령에게 하고 싶은 말은.
“힘든 일이 지나면 내년쯤 놀러올까 싶었는데...가족이나 나를 포함한 친지들 모두 억울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왜 없겠느냐. 하지만 그가 스스로 선택한 길이니까 존중하고 싶다. 부인과 아이들이 걱정이다. 하루빨리 평안을 되찾길 간절히 바란다.”

이노우에는 29일 서울서 열리는 영결식에 맞춰 노무현 기념관에서 이별회를 열기로 했다. 이 모임에는 노 전 대통령과 비와코에서 세일링하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던 요트 동호회 회원 50여 명이 참석한다.

도쿄=박소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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