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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발견] 배칠수, 눈물의 성대모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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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한 마디 인사조차 못 건네고 떠나 보냈는데, 그 투박했던 목소리 한 번 다시 들을 순 없을까. 25일 오후 8시 20분쯤 MBC 라디오 표준 FM 방송에선 지난 주말 홀연히 이 세상을 떠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목소리가 생방송으로 흘러나왔다.

가늘게 떨리면서 옅은 울음기를 머금은, 분명 그의 육성을 닮아 있었다. 목소리는 국민에게 전하는 마지막 인사였다. 구수한 경상도 억양이 마치 살아있는 듯 말했다.

“열심히 잘들 지내시고요, 건강들 하십시오. 좋은 날이 올 것입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어찌된 영문일까. 방송은 ‘최양락의 재밌는 라디오’의 한 토막이었다. DJ 최양락씨는 ‘대충토론’ 코너가 마무리될 때쯤 말을 꺼냈다. 대충토론은 이명박 대통령, 노 전 대통령 등의 목소리를 흉내내는 방송인 배칠수씨가 꾸미는 시사 콩트다.

최씨는 코너 말미에 “성대모사이긴 하지만 6~7년을 함께해서 그런지 (노 전 대통령이) 곁에 계신 것 같고 불러보면 대답하실 것 같다”며 “목소리도 너무 듣고 싶다. 그분의 목소리 한 번 더 듣고 싶어하는 제 마음을 이해해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배칠수씨에게 노 전 대통령 성대모사로 마지막 인사를 해줄 것을 부탁했다.

잠시 뜸을 들인 배씨는 한껏 내려앉은 톤으로 노 전 대통령의 목소리를 흉내내며 “잘들 지내시고 안녕히 계시라”는 마지막 작별 인사를 건넸다.

방송은 다시 개그 코너로 이어졌지만, 배씨의 마지막 성대모사에 대한 숙연함은 방송 내내 축축히 젖어있는 듯했다. 청취자들은 방송 게시판에 “세상에서 가장 슬픈 성대모사였다” “라디오를 듣던 중 너무 슬퍼 통곡을 했다. 실제 음성을 다시 한번만 듣고 싶다” 등의 의견을 남겼다.

정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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