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풍에 날린 정치]순풍 남북경협 북풍 서리 맞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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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정치권에 몰아치고 있는 북풍이 남북경협에도 과연 된서리를 내릴 것인가.

경제계는 일단 북풍사건의 추이를 지켜봐야 하겠지만 '정경분리' 의 원칙아래 새 정부 들어 순풍이 불어올 듯하던 남북경제접촉에 악재로 작용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기업들이 특히 우려하는 점은 이른바 '이대성 파일' 등 안기부의 정보파일들이 혼란스럽게 대외로 유출되면서 기업들의 '대북 라인' 도 밖으로 드러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기업들의 경우 남북접촉이 정부차원만큼은 축적이 없으나 기업에 따라서는 상당기간 공 (功) 을 들여온 곳도 많고, 따라서 노출에 따른 피해가 클 것이라는 예측에서다.

이와 관련, 대우그룹의 한 관계자는 "이 사건으로 건드리지 말아야 할 대북 라인과 사업내용이 드러나면 북한 당국자들이 사업을 취소토록 하거나 담당자들을 엄격하게 관리할 가능성이 있다" 고 우려를 감추지 못했다.

그동안 대북사업에 개입이 불가피했던 안기부 담당자들의 재편과 이에 따라 예상되는 북한 당국자들의 이동 등 남북쌍방에 닥쳐올 후유증도 경협차질의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실제 지난 2월 통일원으로부터 나진.선봉 옥외광고 사업 설치승인을 받은 광인기업은 최근 북한내의 경협 파트너가 바뀌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이를 확인중이다.

재미교포로 평양에서 봉제공장을 운영하는 화인통상 김찬구 (金燦球) 사장은 "새 정부 들어 남북교류 협력의 여건개선이 기대됐는데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걱정된다" 고 말했다.

하지만 일각에선 새 정부가 정경분리 원칙을 천명하고 있는 만큼 이번 사건이 그동안의 비정상적인 남북간 거래행태를 정상화시키기 위한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견해도 크다.

삼성경제연구원 동용승 (董龍昇) 수석연구원은 "장기적으로 정경분리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경협을 추진하려면 어차피 그동안의 관행에서 탈피하기 위해 정리돼야 할 부분이 있고 이번 사건이 그 작업을 앞당길 수도 있다" 고 지적했다.

북한도 이와 관련해서는 최근 남북관계의 재정립을 위해 청년동맹사건 등 일련의 정리작업을 진행해 왔고 지금도 추진중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한편 대기업들은 이번 북풍사건이 쌍방간에 냉기류를 형성하겠지만 임가공사업 등 기존의 대북경협사업에는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고 시간이 지나면 남북경협이 정상궤도에 오를 것으로 보고 있다.

LG상사 장경환 (張景煥) 부장은 "이번 사건이 경협과는 관계없이 발생한 특수한 사안이고 정부가 누차 정경분리를 천명해 왔다는 점에서 중장기적으로는 경협이 지속될 것" 이라고 말했다.

신원태·이영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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