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폐 돋보기 <⑩ · 끝> 70년대 5000원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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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화폐 발행과 유통 전부터 많은 화제를 몰고 다니며 세간의 주목을 끌던 5만원권이 드디어 다음달 23일 모습을 드러낸다. 도안이 이미 공개돼 갑론을박이 일기도 했지만 그런 우여곡절 끝에 나오는 고액권인지라 국민이 기울이는 호기심과 기대는 더 높다.

고액권 발행에 대한 논의는 1970년대 초에도 있었다. 커진 경제규모에 걸맞게 고액권 발행이 절실히 요구됨에 따라 정부는 72년 한국 화폐 역사상 최초의 고액권이라 할 1만원권을 발행키로 했다. 그러나 석굴암 본존불을 화폐의 주도안으로 삼은 것에 대한 종교계 등 반대 여론이 커지며 사회 문제로 비화됐다. 사태의 심각성을 느낀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1만원권 발행 연기를 지시했다. 대신 5000원권에 대한 발행을 서두르게 됐다.

순서를 바꿔가며 급하게 발행하게 된 5000원권 주인공은 조선시대 대유학자인 율곡 이이로 낙점됐다. 율곡이 들어간 신권이 처음 공개되자 그 초상 역시 논란에 휩싸였다. 지폐 속 율곡은 갸름한 얼굴에 커다란 두 눈, 뾰족한 콧대까지 영락없는 서양인의 모습이었다. 조각가 김정숙씨가 만든 작품을 찍은 사진을 토대로 외국인이 만든 도안이었기 때문이다. 화폐 제조 기술이 뒤처졌던 우리나라는 당시로서는 선진 기술울 보유했던 일본이나 영국 은행권 제조 회사에 화폐 제작을 의뢰할 수밖에 없었다. 5000원권도 영국 회사인 토머스 들라루(Thomas De La Rue)에서 제작했는데, 동양인의 골격 구조를 잘 모르던 영국 디자이너가 ‘서양인 율곡’을 만들어냈던 것이다.

초상 시비는 결국 화폐 도안을 바꾸는 계기를 제공했고, 표준 영정을 기본으로 한 도안이 들어간 새 5000원권이 탄생했다. 누가 율곡의 새 초상을 그렸을까. 바로 이번에 발행될 5만원권 신사임당을 그린 이종상 화백이다. 우리 화폐에 동시에 등장하게 된 어머니와 아들은 37년 전부터 질긴 인연의 끈으로 묶여 있었던 것이다.

백남주 한국은행 화폐금융박물관 학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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