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시계라도 짝퉁 판매 No"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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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렉스, IVVC, 파톡 필리핀, 티, 오메리가….

어디서 많이 들어 본 이름이다. 수백, 수천만원을 넘나드는 고가의 명품 시계 이름인 듯 한데 자세히 뜯어보니 조금씩 다르다. 이들은 모두 애플이 운영하고 있는 소프트웨어 전용 다운로드 사이트 엡스토어에서 팔리고 있는 '짝퉁' 명품 시계다. 물론 엡스토어상의 제품인 만큼 실제로 손목에 찰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인터넷을 통해 다운로드 받아 자신의 아이폰(휴대전화)이나 아이팟 터치(동영상·MP3 플레이어)의 화면에 띄워놓고 쓸 수 있는 프로그램일 뿐이다. 그래서 가격도 개당 99센트에 불과하다.

여기서 팔리는 제품은 실제 명품의 디자인과 로고를 그대로 따왔다. 짝퉁인 릴렉스(Relax)는 스위스 명품 롤렉스(Rolex)를, 파톡 필리핀(Patok Philippine)은 파텍 필립(Patek Phiippe)을, 로치니스(Lochiness)는 론진(Longines)을 베꼈다. 또 실제 명품 시계인 IWC는 IVVC로, 브라이틀링(Breitling)은 브라이틀링크(Breitlink)로, 티쏘(Tissot)는 티(Tissue)로 둔갑했다. 이 사이트를 운영하는 디지토폴리스 게임 스튜디오는 홈페이지를 통해 "어차피 디지털 상에선 어떤 디자인의 시계라도 성능은 똑같다"며 "그냥 한번 웃자고 이런 '짝퉁' 제품을 내놨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명품 업체들의 생각은 다른 모양이다. 22일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카르티에는 이날 애플을 상대로 이 엡스토어와 관련, 미국 뉴욕 맨해튼 연방지법에 상표권 침해 소송을 제기했다. 사전에 아이폰과 아이팟 터치에 자사 시계 디자인을 쓸 수 있도록 허락한 적이 없는데, 애플이 이를 무단 사용함으로써 부당한 이익을 얻고 있다는 이유였다. 현재 카르티에(Cartier)의 애플판 복제품은 '카파크(Carpark)'라는 이름으로 팔리고 있다.
다행히 싸움은 크게 번지지 않았다. 소송이 제기된 직후 애플은 해당 앱스토어를 없앴고, 이를 확인한 카르티에도 소송을 곧 취하했다.

이번 해프닝에 대해 여론은 둘로 갈렸다. 우선 앱스토어가 누구에게나 개방돼 있는 만큼 애플이 철저한 감시체계를 마련하지 않는 한 또 이런 문제가 또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WSJ는 "애플은 지난 달에도 화면 속의 아이가 울면 전화기를 흔들어 조용히 시키는 게임을 내놨다가 아동복지단체의 거센 항의를 받은 바 있다"고 보도했다. 반면 재미로 만든 사이트에 카르티에가 과민반응한 것 아니냐는 반박도 나왔다. 명품관련 블로그인 럭시스트는 이번 소송을 두고 "명품 업체들이 얼마나 유머감각이 없는지 또 한번 증명됐다"고 꼬집었다.

김필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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