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자민당] 上. 고이즈미 왜 패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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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일본의 11일 참의원 선거에서 민주당이 집권 자민당을 앞질렀다. 야당이 참의원 선거에서 승리한 것은 1989년 사회당 이래 15년 만이다.

참의원 선거운동 기간 일본인들이 가라오케에서 자주 부른 노래가 있다. "인생은 여러가지, 남자는 여러가지, 여자도 여러가지"란 가사가 들어있는 시마쿠라 치요코(島倉千代子)의 옛 가요였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총리가 지난달 3일 국회 발언에서 인용해 국민적 공분을 샀던 가사다.

그는 자신의 국민연금 미납 의혹과 관련, 회사에 적만 걸고 월급을 받은 적이 있지 않느냐고 묻는 야당 당수의 질문에 "인생은 여러가지, 회사는 여러가지, 사원도 여러가지"라고 태연히 맞받아쳤다. '뭐가 문제냐'는 투였다.

방송들은 이 장면을 반복해 틀었고 신문들은 연일 고이즈미의 발언을 비판했다. 30~40여년간 꼬박꼬박 부어온 국민연금이 바닥나 여론이 비등하던 시점이었다. 고이즈미의 실언은 불에 기름을 끼얹은 격이었다. 그만큼 자민당의 이번 참의원선거 패배는 예고됐다.

고이즈미 총리는 일본 정치인으론 보기 드물게 소신이 분명한 사람이다. 2001년 예상 밖으로 총리에 오를 때에는 "자민당을 깨부수겠다"고 말했다. 그의 솔직한 어법은 국민에게 '서민과 가장 비슷한 감각을 가진 정치인'이란 인식을 심었다. 지지율은 80%가 넘어 역대 최고였다.

3년 동안 그가 보여준 정치 스타일은 '서프라이즈'와 '톱다운'이란 단어로 요약된다. 북.일 정상회담, 야스쿠니 신사 참배 등 정치적 효과를 극대화하는 깜짝쇼를 즐겼다.

그런 스타일은 점점 독선적으로 변질됐다. 자위대의 다국적군 참가는 대국민 설명을 생략한 채 방미 기간 중 부시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먼저 터뜨렸다. 연금법 개정안도 의회에서 다수결로 통과시켰다. 솔직함이 미덕이었던 고이즈미의 말은 "인생 여러가지" 발언에서 보듯 경솔함으로 바뀌어 갔다. 그러는 사이 지지율은 추락을 거듭했다. 마이니치신문은 "11일 선거에서 전통적 자민당 지지층의 20%가 민주당에 표를 던졌다"고 보도했다.

고이즈미는 9월로 다가온 당직개편 때 최대 다수 파벌인 하시모토(橋本)파의 협공을 받을 게 뻔하다. 그러나 당장 총리직을 물려받을 만한 적임자가 없기 때문에 선거 패배에도 불구하고 총리직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연립 파트너 공명당의 발언력은 세질 것이다. 공명당의 의석 없이는 참의원에서 과반 의석에 못미치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당장 연금법과 자위대 이라크 파견의 철회를 요구할 기세다.

도쿄=예영준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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