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너럴 모터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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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제너럴모터스(GM)에 좋은 것은 미국에도 좋다.”
아이젠하워 대통령 시절 미 국방장관이던 찰스 윌슨이 한 말이다. 기업과 국가를 동일시하는 기업 중심적 사고방식이 담겨 있다. 우리나라에선 기업을 중시하고 규제를 완화하자는 취지로 사용되기도 한다. ‘미국은 저 정도로 기업을 생각하는데 우리는 뭐냐’ ‘왜 기업을 못살게 구느냐’ 하는 노골적인 말을 하고 싶을 때 점잖게 인용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윌슨이 왜 이런 말을 했는지 살펴보면 의미가 조금 달라진다. 1953년 국방장관으로 지명받은 그는 GM의 현직 사장이었다. GM 주식도 250만 달러어치나 갖고 있었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중 GM의 군수품 제조에 진력한 공로로 훈장을 받기도 했다. 이런 경력이 상원 인사청문회에서 문제됐다. 국방장관이 되려면 사기업과 인연을 끊어야 하는 것 아니냐, GM의 대주주가 어떻게 정부 요직에 앉을 수 있느냐, 공인으로서 이해상충이나 유착이 일어난다…. 여론은 그가 갖고 있던 GM의 주식을 처분해야 한다는 쪽으로 기울었다.

이런 압박에 대응해 그는 말했다. “오랫동안 나는 미국에 좋은 것은 GM에도 좋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런 문제(이해상충)가 일어나리라곤 보지 않는다.” 이게 나중에 뒷부분만 발췌되면서 그 의미가 확대됐다. 이 발언은 미국에서도 적잖은 비판을 받았다. 기업가의 오만이 물씬 풍겼기 때문이다.

사실 윌슨은 청문회 이전에 더 큰 문제성 발언을 한 적이 있었다. “미국이 대공황 시절로 되돌아가지 않으려면 영속적인 전시경제가 필요하다.” 나중에 군산복합체의 등장을 예고하는 발언이었다. 그런데 이 말은 별 주목을 받지 못한 채 잊혀졌고, 의회에서 자기 변론을 위해 한 신상발언이 더 유명해졌다. 어쨌든 그는 청문회를 통과해 국방장관을 지냈고, GM은 수십 년간 미국의 대표기업으로 군림했다.

윌슨의 발언 이후 미국과 동일시되던 GM은 지금 어떻게 됐나. 새삼 말이 필요 없을 지경이다. 지난해 말 이후 미 정부로부터 받은 구제금융이 194억 달러에 이른다. 우리나라의 한 해 대미 수출액의 40%를 넘는 규모다. 이것도 모자라 앞으로 얼마가 더 들어갈지 모른다고 한다. 미국의 철학자 톰 모리스는 최근 한 칼럼에서 “아리스토텔레스가 GM을 경영했더라면 완전히 다른 기업으로 만들어 놨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98년 출판된 『아리스토텔레스가 GM을 경영한다면』이라는 책으로 유명한 그는 인간의 근본에 대한 고찰과 인식이 경영에서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당장 불을 꺼야 하는 GM의 경영진에게 이 말이 귀에 들어올 리 없다. 물론 잘나갈 때 참고했더라면 달라졌을지 모른다. 기업은 무조건 잘돼야 존재 의미가 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경영하든, 마키아벨리가 경영하든 상관없다. 좋은 GM에 좋은 것은 미국에도 좋고, 나쁜 GM에 좋은 것은 미국에도 나쁘기 때문이다.

중앙일보 금융·증권데스크 yhn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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