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안 월스트리트저널]미국 투기자금 일본 부동산 공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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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미국계 벌처펀드들이 부실채권 처리에 골몰하고 있는 일본 금융기관 소유의 부동산을 사들이는데 열을 올리고 있다.

벌처펀드란 경영난으로 도산하거나 빚에 몰린 기업들로부터 각종 자산을 헐값에 인수해 이를 비싸게 팔아치워 그 차익을 챙기는 투기적 자본을 뜻한다.

미국의 벌처펀드는 거품경제 붕괴와 경기 침체에 따라 지금이 일본 부동산 매입의 적기라고 판단하고 있다.

로스앤젤레스에 본사를 둔 시큐어드 캐피털사의 마이클 코넨버그 사장은 "우리는 일본에서 참다운 기회를 엿보고 있다" 고 말했다.

이 회사는 1년 전만 해도 도쿄에 2명의 직원만을 배치했으나 지금은 12명으로 늘렸다.

시큐어드 캐피털은 올해 연말까지 10억달러를 일본내 부동산 매입에 투자할 계획이다.

뱅커스 트러스트와 골드먼 삭스.메릴 린치.모건 스탠리.JP모건 등 월가의 대형 금융기관들도 가세하고 있다.

뱅커스 트러스트는 지난해 닛폰신용은행으로부터 장부가액이 22억달러에 달하는 부동산을 2억2천만달러에 매입했다.

이런 현상은 10여년 전 일본 자본이 미 부동산을 사들이던 것과 묘한 대조를 보인다.

지난 40년동안 성장 가도를 달려온 일본이 지금과 같은 부동산 침체를 겪은 적은 없다.

일본의 일부 상업용 부동산은 시세로 따져 지난 91년 최고 정점이었을 때에 비해 80%가량 값이 떨어진 상태다.

많은 미국계 자본들은 벌써 내부적으로 사고 싶은 부동산을 점찍어 둔 상태다.

부동산 투자자문회사인 E&Y 케네스 리벤설사는 현재 2백억달러 가량의 미 자본이 일본내 부실채권과 부동산 매입에 투자된 것으로 추정하는 한편, 투자금액이 앞으로도 빠르게 증가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지난 6일 미쓰이 투자신탁은 장부가격이 10억달러에 달하는 부동산을 처분하기 위해 리벤설사를 판매 자문회사로 선정했다.

매입 의사를 밝힌 구매 희망자들의 명단이 지금까지 공개되지 않고 있으나 이들은 모두 외국계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금융기관들에 대해 금융당국이 장부가격 이하로 떨어진 부동산을 계속 장부가격으로 보유하는 것을 제한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것도 이런 현상을 부추기고 있다.

일 은행들은 건설 공사를 벌이고 있는 골프장이나 파친코 유기장 같은 부실 자산을 덤핑 가격으로라도 처분해야 할 상황이다.

하지만 벌처펀드들이 지나치게 공격적이라는 지적도 있다.

장부가격이 60억~1백억달러에 이르는 대형 거래가 추진되는 현실에서 최근 일부 외국계 회사들은 본사에 자신들의 부동산 매입을 정당화시키기 위해 부동산 감정회사에 감정가격을 더 높게 책정해 줄 것을 요구하는 사례도 있다는 것이다.

부동산 감정평가사인 산유 시스템의 이노우에 아키요시 사장은 "이런 상황은 10년 전 일본에서 거품 경기가 시작될 때와 똑같은 것" 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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