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서] '유전자 변형' 와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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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한병에 수백만원씩 하는 프랑스 부르고뉴 지방의 최고 레드와인 로마네 콩티, 2000년 김대중 대통령 방북 때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만찬에 내놓았다는 보르도 특등급 와인 샤토 라투르, 스페인 리베라 델 두에로 지역의 고급와인 베가 시실리아….

프랑스와 스페인의 명품 와인들이 뭉쳤다. 프랑스 국립농업연구소(INRA)에서 추진 중인 포도나무 유전자변형 실험을 막고, 유전자변형식품(GMO)과의 전쟁을 선포하기 위해서다.

INRA는 병충해에 강한 포도나무 품종을 생산하기 위해 분자생물공학위원회에 유전자변형 실험 허용을 요청했다. 위원회는 이 요청을 호의적으로 검토하고 있어 사실상 관계부처의 최종 승인만 남은 셈이다. INRA는 승인이 나는 대로 바이러스에 저항력을 갖는 70그루의 유전자 변형 포도나무를 시험장에 심을 계획이다.

명품 와인 생산업자들은 8일 파리의 한 레스토랑에 모여 대책마련에 나섰다. 프랑스 와인업계는 최근 줄어든 수출과 내수판매로 이중고를 겪고 있다. 그런데 유전자 변형 포도로 만든 와인까지 등장한다면 치명타를 맞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로마네 콩티 포도원의 공동운영자인 오베르 드빌렌은 "(만약 포도나무의 유전자변형을 승인한다면) 수많은 유전자 조작 포도가 쏟아지게 될 것"이라고 목청을 높였다.

특히 고급와인 생산업자들은 유전자조작 포도 실험이 야외에서 진행되면 꽃가루의 이동으로 자기네 포도품종에까지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이에 대해 INRA 측에서는 "포도나무는 자가생식을 하기 때문에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는 반응이다.

결국 문제는 프랑스만 홀로 독야청청할 수 있겠느냐는 점이다. 유전자 변형 포도품종 개량 실험이 미국.독일.이탈리아에서는 이미 한창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박경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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