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틀서 현정부 돕겠다는데… 황석영 변절인가 지평 확대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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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황석영(66)을 둘러싼 논란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황씨가 이명박 대통령과 중앙아시아 2개국을 방문하면서 했던 발언들 때문이다. 여기서 황씨는 몽골+남북한의 ‘알타이 연합’ 구상을 밝히면서 “진보측에 욕먹을 각오가 돼 있고,큰 틀에서 현정부를 돕겠다”고 말했다. 파장은 컸다. 좌파 성향의 지식인들과 문인들은 “변절”이라며 일제히 황씨를 공격했다. 우파쪽에서도 “노벨상 타기위한 전략일뿐”이라는 비아냥이 대세다. 황씨는 귀국 직후 한겨레·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진의가 왜곡됐다”고 주장한 뒤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소설가 황석영씨가 13일 카자흐스탄에서 한 발언에서 촉발된 ‘변절 논란’이 일주일째 뜨겁다. 사진은 14일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전날 자신의 발언에 대해 설명하는 황씨의 기자간담회 모습. [연합뉴스]

본지는 황씨의 변절 논란에는 관심이 없다. 그런식의 이데올로기를 앞세우는 공방은 별 의미도 없다고 생각한다.하지만 황씨가 자신의 ‘알타이 연합’ 주장을 구체화하기 위해 가장 먼저 접촉했던 언론이 중앙일보였다. 황씨가 어떤 과정을 통해 이런 구상을 하게 됐고, 정부와는 어떻게 협조관계를 맺게 된 걸까.

◆오래전부터 준비된 구상=1월 말 경기도 고양시의 한 음식점. 황씨는 여기서 중앙일보 기자들에게 자신이 구상중인 ‘평화열차 세계작가 포럼’계획을 언급했다. 파리에서 출발하는 열차에 노벨상 수상 작가들과 국내 작가들을 태우고 중국,시베리아, 몽골을 거쳐 평양으로 들어가고 거기서 판문점을 넘어 서울까지 오겠다는 것이다. 황씨는 이런 행사를 통해 경색국면에 빠진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싶다고 했다. 그와 더불어 몽골·우즈베키스탄·카자스흐탄 등 알타이 문화권 국가들과 남북한이 함께 ‘알타이 연합’을 결성하고 싶다는 포부도 말했다.중앙일보가 도와달라는 요청이었다.

◆대통령 면담=문제는 두가지. 첫째는 북한이 과연 그걸 수용하겠느냐, 둘째는 거기에 들 수백억원의 비용을 어떻게 마련하느냐. 황씨는 이걸 풀기위해 정부의 도움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이에따라 황씨는 청와대 관계자를 통해 이명박 대통령과의 면담을 요청했다. 다른 한편으론 측근 인사를 통해 북측의 의사를 타진하기도 했다.

하지만 8월15일에 노벨상 작가들을 평양과 서울로 불러모으려던 계획은 시간이 촉박해 무산됐다. 남북관계가 갈수록 경색된 것도 또다른 원인이었다. 이에따라 황씨는 올해에는 ‘알타이 연합’ 결성에 매진하기로 입장을 바꿨다. 마침 이명박 대통령이 자원외교를 위해 중앙아시아 국가들을 방문할 계획이었다. 청와대에서 이 대통령을 만난 황씨는 자신의 구상을 전했다. 이 대통령도 황씨를 지원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했다고 한다. 황씨를 ‘중앙아시아 특임대사’에 임명한다는 얘기도 그뒤 나왔다.

◆아리송한 발언배경=황씨가 카자흐스탄과 귀국 비행기에서 한 발언은 진보진영으로선 충격으로 받아들일 내용이다. “광주사태가 우리만 있는 줄 알았는데 영국 대처 정부때도 시위군중에 발포해 30∼40명의 광부가 죽었고 프랑스도 마찬가지더라.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사회가 가는 것” “좌파는 리버럴해야 하는데 권위주의 정권시절의 관행이 남아있는것 같다”는 등의 발언이 그렇다.

이에 대해선 황씨가 이 대통령을 수행한 뒤 ‘알타이연합’구상이 구체화된데 흥분해 말 실수를 했다는 지적이 있다. 정부에 감사를 표시하다 ‘립서비스’가 지나쳤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부에선 ‘평화열차’니 ‘알타이 연합’이니 하는 모든 프로젝트가 결국 황씨가 노벨상을 받기위한 포석이라는 지적도 있다. 황씨는 귀국 직후 인터뷰에서 “말이 잘못 전달된 점이 많다” “내년 상반기까지 이명박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을 한시적으로 용인하려는 것이었다”고 해명했다.

이에대해 김우창 전 고려대 교수는 “황씨의 변절 논란은 지엽적이고 그의 행동이 나라와 국민에게 어떤 이익을 가져올 수 있느냐라는 관점에서 사태를 지켜봐야 한다”며 “이념에 상관없이 정부가 요청하면 도와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진중권 “기억력 2초라는 금붕어도 아니고…” 김지하 “작가는 오른쪽·왼쪽 갈 자유 있어야
각계 말말말

◆황석영, 카자흐스탄 기자간담회=“진보측으로부터 욕먹을 각오 돼 있다. 큰 틀에서 현 정부에 동참해 가겠다.” “일각에서 현 정권을 보수 우익으로 규정하지만 스스로 중도 실용정권이라고 한다. 나는 이 대통령이 중도적 생각 뚜렷하게 갖고 있는 것으로 봤다.”“이라크 파병, FTA 체결한 지난 정권이 어디 좌파 정권인가. 민노당도 비정규직 문제, 외국인 근로자 문제까지 못가고 노동조합 정도에 멈춰 있다. 좌파는 리버럴해야 하는데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절의 민주화 운동이 억압당했던 관행이 남아 있는 것 같다. 한나라당이 서울서 지지 얻어 전국 정당 기틀 잡은 것은 진전이다.” “광주사태가 우리만 있는 줄 알았다. 70년대 영국 대처정부 당시 시위군중에 발포해 30∼40명의 광부가 죽었고 프랑스도 마찬가지더라.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사회가 가는 것이다.”

◆민노당 부성현 부대변인=“진보정당에 주는 쓴소리가 궤변으로만 읽힌다. 황 작가야말로 중도에서 뉴라이트로 월경한 것 아니냐.”

◆민노당 강기갑 대표=“망언에 가까운 발언을 하고 있다. 비판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진중권, 진보신당 게시판에 올린 글 ‘황석영 개그계 데뷔’=“2007년 대선 때 독재타도 외치던 사람은 바로 황석영씨였다. 그런데 이제 와서 사돈 남의 말 하고 계시니…. 기억력이 2초라는 금붕어도 아니고. 욕도 웬만해야 하는 거지 이 정도의 극적인 변신이라면 욕할 가치도 없다. 그러니 그냥 웃고 넘어간다.”

◆황석영, 귀국 비행기 안 기자간담회=“이명박 정부 아직 ‘중도’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지만 이 대통령은 중도실용 노선 표방한다고 본다.”

◆김상봉 전남대 철학과 교수, CBS 라디오 인터뷰=“(광주 민주화운동 관련)다른 나라에도 시민·노동자가 들고 일어났을 때 발포가 있을 수 있지만 신군부는 합법적 국가 권력이 아니었다. 싸잡아서 똑같다고 말하는 건 술자리에서 취중에 할 수 있는 말일지는 몰라도 사실에 대한 너무나 큰 왜곡이다. 비애의 감정 불러일으킨다.”

◆소설가 복거일, 평화방송 인터뷰=“좌파 정권 하에서 핍박받은 우익 문인 많다. 대표적인 게 이문열씨다. 그런 분 제쳐놓고 갑자기 황석영씨를 개인적 친분을 내세워 데리고 가면 우파에 속한 시민은 어떻게 보겠나? 우리가 고생해서 대통령 만들었는데 이게 배은망덕 아니냐.”

◆황석영씨, 한겨레 인터뷰=“진보에서 욕먹고, 보수에서 욕먹고…내 말이 잘못 전달된 점이 많다.”“광주가 나이자, 나의 문학이다. 그 표현을 갖고 ‘가치가 변했냐’는 것은 말꼬리 잡기다.” “순방 따라간 것 신중하게 결정할 걸 그랬나 싶다.” “이명박 정부와 부분적으로 손 잡으려 하다 보니 립서비스가 지나친 측면 있다.”

◆김지하, 평화방송 인터뷰=“황석영씨가 발언하는 것은 자기 자유다. 석영이가 그렇게 나쁜 놈 아니에요. 작가가 좀 오른쪽으로 갔다 왼쪽으로 갔다 그럴 자유가 있어야지.” “진중권이라는 사람, 예술이나 문학에 대해서는 전혀 백치다. 미학공부 다시 하라고 하세요.” “(민노당에 대해)저희들이나 잘하라고 하세요.”

◆황석영, 네이버 기고=“작가는 언제나 사회의 금기를 깨는 자다. 행동 자체가 논의의 출발이라 생각했으나 엉뚱한 해석과 성급한 판단이 속출했다. 내 말과 행동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줬다면 정중히 사과드린다.”“(변절 논란에 대해)국내 현안과 정책 놓고 싸울 때는 싸워야겠지만 타협하고 다른 방향으로 가도록 정책을 견인해 주기도 해야 한다.”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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