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아라리 난장 51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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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나중에 봉환이며 변씨가 찾아와서 합석을 하게 되었지만, 철규는 노래방에서 겪었던 북새통에 대해선 발설하지 않았다.

넉살좋은 선착장의 여자들과 각축을 벌였던 일이 까닭이야 어디에 있었든 우선 창피스러웠고, 그 아귀다툼을 단 몇마디 말씀으로 평정시킨 승희의 역할에 대해서도 발설하기엔 부담스러운 일이기 때문이었다.

변씨집에서 건조하고 있던 명태 코꼬다리들을 거두어 봉평 (蓬坪) 으로 떠난 것은 강성민이가 이틀을 체류하고 서울로 떠난 다음날이었다.

강원도 내륙의 외장 (外場) 을 돌기로 한 것은 물론 일찌감치 합의를 보았던 일이었다.

다만 주문진 어판장의 노점상들과 예상되는 마찰을 피하기 위해 시기를 앞당긴 것 뿐이었다.

노래방에서 두 여자가 걸어왔던 시비는 언뜻 보면 알량한 텃세에 불과했지만, 그 뒤에는 안개속에 가려진 담합조직이 존재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채낚기어선의 일용선원에 불과했던 변씨나 윤씨도 백방으로 수소문을 하였지만, 그들 조직의 정체를 확인하기는커녕 단서조차 잡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들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만은 충분히 감지할 수 있었다.

근해를 종횡무진으로 범접하며 남획을 서슴지 않는 트롤어선들의 횡포 때문에 포구 근처만 맴돌며 잔챙이 잡어들이나 건져올리며 시난고난 견디고 있는 채낚기어선들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각축에도 중재를 한답시고 서슴없이 끼어드는 사람들이 바로 그들 조직이라는 것을 나중에서야 알아차린 것이었다.

네 사람의 힘으로는 지금 당장 그들을 설득할 능력이 없었다.

현수막을 내걸고 소매인데도 도매가격으로 건어물을 팔려했던 것이 화근의 원인이었다.

주문진 선착장 어름에서 잔뼈가 굵어왔다고 장담을 서슴지 않았던 변씨도, 선원으로서 배를 타고 있었을 때의 처지와 배를 내리고난 다음의 풍속이 깜짝 놀랄 정도로 판이한데 적이 당황하는 눈치였다.

당장 외장으로 나서자고 채근을 한 장본인은 그들 조직과 속시원한 해결에 앞장서지 못했던 변씨였다.

좀더 뜸을 들이자는 박봉환을 꼬드겨 어물을 용달차에 싣고 길을 떠난 것은 오후였고, 봉평으로 떠나자고 한 것은 철규였다.

윤종갑은 주문진에 남아서 어판장에 나오는 명태의 시세를 엿보기로 했다.

뭔가 꺼림직했던 변씨가 내키지 않아 하였으나 철규가 우격다짐으로 잡아끌었다.

길은 멀었지만 아침 일찍 떠나면 봉평까지는 한낮에 당도할 수 있는 노정이었다.

그러나 까닭없이 게으름을 피우며 엉뚱한 소리만 늘어놓는 변씨와 입씨름을 벌이는 통에 해질 무렵에서야 떠나게 되었다.

주문진에서 봉평 가는 국도는 물론 월정사로 가는 진고개를 넘어 진부를 거치는 길이었다.

그들은 월정사 초입에 있는 그 민박집에서 묵은 뒤 새벽에 봉평으로 떠나기로 하였다.

민박집에 당도하고 나서야 변씨는 탐탁잖아 했던 속내를 털어놓았다.

바로 윤종갑을 주문진에 남기고 온 까닭이었다.

"그 위인은 소시적부터 농간질에는 이골이 났거든. 우리 행중에서는 그 위인의 약삭빠른 속셈을 나 혼자서만 알고 있어. 그런데 시세를 보라 하고 하필이면, 그 위인을 남기고 떠난 게 아무래도 속이 니글니글하게 켕긴단말야. " "형님요. 우리가 합치기로 한 지가 며칠이나 됐다고 벌써부터 동배간을 허물잡고 있습니껴? 사람이 그라면 못써요. 또 윤씨가 농간질에 능숙한 인사라 카더라도 명태 몇 마리 갖고 농간질하면, 얼매나 하겠어요. 윤씨가 몽땅 삼켜뿌린다 카더라도 돈 푼깨나 쓴다는 놈들 아침 해장술값 아입니껴. 좀스럽게 그라지말고 그만 잊었뿌소. " "이사람 보게? 어지간히 오지랖 넓은 척하네? 그래 임자 말대로 그 위인이 우리 밑천을 몽땅 삼켜버렸다면, 임자는 그거 잘됐습니더 하고 허허 웃고 말겠네?" "또 열받는 소리 하고 있네요. 의심하기 시작하면, 한이 없는기라요. 동업하기로 했으면, 두고 봐야지 사사건건 의심을 하게 되면, 화병 생긴다 카는거 형님은 몰라서 이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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