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교향악단엔 '노장'이 없는걸까…발목잡는 '겸직금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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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외국의 유명 교향악단에는 백발이 희끗희끗한 노신사들이 많은데 왜 국내교향악단에선 그런 풍경을 보기가 어려울까. KBS교향악단.서울시립교향악단.코리안심포니 등 국내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경우 정년 65세를 채우려들기는커녕 앙상블 감각을 익힐 만하면 떠나기 예사다.

이런 현실에서는 연륜이 빚어내는 중후한 사운드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최근에도 KBS교향악단의 오보에 수석 이희선씨가 경희대로, 팀파니 수석 박광서씨가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교수로 각각 자리를 옮겼다.

실력 있는 연주가들이 교향악단을 버리고 대학강단으로 옮기는 데는 저마다 사정이 다르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각 교향악단이 겸직을 금하고 있기 때문.

KBS와 서울시향은 준공무원인 단원들에게 공무원 겸직규정을 그대로 적용, 대학교수를 겸임하지 못하도록 못박고 있다.

그러면서도 악장에 한해서만은 서울시향의 경우 예외적으로 대학교수 겸임을 허용하고 있다.

대학교수로든 아니면 교향악단 단원으로든 어느 한쪽에만 전념케 한다는 겸직금지 조항의 원래 취지는 백번 옳다고 하더라도 단원들에게 '평생 직장' 의 만족감과 안정감을 줄만한 여건이 미비한 현실에서 이 조항은 수준높은 연주자들을 대학에 빼앗기는 결과를 낳고 있다.

따라서 한국을 대표하는 KBS교향악단 만이라도 충분한 처우개선과 함께 연주횟수를 늘여 연주에 전념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하던가 아니면 대학교수 겸직을 허용해 단원 스스로 경제문제를 해결하도록 유도해야한다는 것이 음악계의 여론이다.

교향악단을 포기하고 대학교수를 택한 연주자들은 아주 많다.

김민 (서울대).김의명 (한양대).정찬우 (연세대).안동호 (가톨릭대).김광균 (경원대).윤수영 (한양대).배은환 (단국대) 교수 등이 KBS교향악단에서 바이올리니스트로 활약했으며 김봉 경원대교수가 첼리스트로, 김현곤 서울대교수가 클라리넷 주자로, 이상일 계명대교수가 트럼펫 주자로 활동했다.

이외에 장준하 연세대교수 (트럼펫) 와 임현식 계명대교수 (클라리넷) 는 서울시향 출신이다.

외국의 유명교향악단은 어떤가.

빈필하모닉의 경우 단원 대부분이 빈음악원 교수를 겸임하고 있다.

그래서 우수한 연주기량이 교향악단의 역사와 더불어 후배들에게 고스란히 전수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우수한 연주자들이 맘껏 연주할 수 있는 분위기가 마련되지 않은 가운데 KBS교향악단이 이탈리아 출신의 지휘자 주세페 메가를 부지휘자로 영입하기로 결정해 국내음악인들의 어깨를 더욱 움츠러들게 하고 있다.

현재 이탈리아 피렌체를 중심으로 오페라와 발레 연습지휘자로 활동 중인 메가는 올해 10주 체류하면서 KBS교향악단을 한차례 지휘하고 단원들을 훈련하는 조건으로 3만달러 (약5천만원) 의 개런티를 요구하고 있다.

여기에 항공료.체재비 등 제반경비까지 합치면 1억원이 훨씬 넘는다.

부지휘자는 지휘자의 신변에 문제가 생길 경우 언제든지 지휘자의 자리를 대신해야하기 때문에 현지 거주가 원칙인데도 굳이 외국인을 부지휘자로 영입하려는 KBS의 움직임을 음악계는 이해하지 못한다.

그것은 외화낭비일 뿐 아니라 국내 젊은 지휘자들을 육성해야할 교향악단의 사명을 포기하는 처사라는 반응이다.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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