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행동과 사유' 外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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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과 사유
김우창 외 지음, 생각의나무, 366쪽, 1만8000원

사유의 공간
도정일 외 지음, 생각의나무, 352쪽, 1만5000원

도정일 교수의 표현대로 ‘사유의 시궁창’, 해체와 ‘탈(脫)-’로 이어지는 극도로 혼미한 사유의 표류 시대에 ‘인간의 고귀한 실천’(플라톤)인 사유란 무엇인가? 이런 의문에 대해 깊은 사유를 보여온 인문학의 거장 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에 관한 뜻깊은 책들이 선보였다. 주지하다시피 김우창 교수의 인문학은 영문학·철학·정치학·사회학·문학·미학 등을 두루 관류하면서 풍요한 인문적 사유의 세계를 일궈왔다. 김 교수의 삶과 글이 분과 학문의 벽을 넘나들면서 점점 깊이를 더해가고 있는 것은 끈끈한 연고에 기초한 권력 구조에서 자유롭지 못한 한국의 지적 풍토에 비춰 볼 때 매우 드문 현상이다.

그는 정치한 언어로 한국 인문학의 지평을 넓혀 놓았으며 이데올로기적 가름이 아닌 사유의 엄밀성을 바탕으로 한 학문의 한 경지를 보여준 최초의 지성으로 평가받는다. ‘심미적 이성’은 그의 학문세계를 표징하는 개념이다. 심미적 이성은 우리 학문의 폐쇄적인 경향과 자족적인 인식의 틀을 뛰어넘어 현실에 뿌리를 둔 이성, 즉 구체적 보편성의 표현 가능성을 묻는 지적 모험의 결실이다.

『행동과 사유』는 중견 인문학자 윤평중·여건종·권혁범·고종석과 한 좌담집이다. 주제는 실로 김 교수의 지적 탐험 영역만큼 광범위하다. 오늘날 방대한 지적 세계를 형성하기까지 그의 지적 성장과 편력·학문 세계를 비롯, 정치·경제·문학·역사 등 지금까지 다뤘던 이론과 현실에 대한 담론이 심도있게 논의되고 있다. 그는 구체적인 삶과 큰 이야기의 촘촘한 관계의 그물을 밝히는 것, 즉 큰 테두리 속에서 구체적인 실존의 성립이 삶의 주제였다고 말한다. 그에게 “보편에의 지향은 사람의 원초적 충동인 것”이며 “산다는 것은 결국 세계와의 관계에 들어가는 것”이고 이는 “개체와 개체의 관계이면서 동시에 그 관계의 밑에 있는 공통된 바탕에 대한 관계”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성에 대한 바른 이해는 구체적 생활공간에서 의미망을 형성하며 결국 심미적 원리는 삶의 원리와 등가다.

대담의 말미에 언급된 행복의 조건은 그의 통찰이 빛을 발하는 대목이다. “행복의 기본적 조건은 생물학적 토대를 튼튼히 하는 일이지요. 의식주가 두루 해결돼야 하겠지요. 그 다음은 자신에게 충실할 수 있는 것이 행복일 겁니다. 그런데 이 충실의 내용은 봉사에 있지요. 자신의 진정한 마음에 봉사하고, 안에서 오는 진리에, 다시 밖으로 오는 진리에 봉사하고 이웃에게 봉사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자신과 이웃과 나라와 우주의 평화를 아는 것이지요.” 이러한 행복론은 김우창 교수의 소탈하고 단정한 인격과 검소한 생활 철학과 무관하지 않다.

한편 『사유의 공간』은 김 교수의 인문적 세계를 전방위에서 살펴본 논집이자 날카로운 비평과 헌사가 어우러진 인문학 보고서다. 영문학·문학이론·현대문학론·근대문학론·초월론·정치철학·심미성·환경생태론 등 다양한 분과를 넘나드는 그의 지적 풍경이 펼쳐지고, 개인적인 경험을 피력한 최장집 교수의 에세이와 40여년 동안 온축된 자료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문헌연보는 ‘김우창’이라는 한국 학문사의 큰 영토에 들어가는 귀중한 지도가 될 것이다.

김동윤 (건국대 문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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