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시대 대중문화죽지 않았다…구전가요 연극등 항일운동 한몫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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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독재자나 철권통치자처럼 부당한 방법으로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들이 무서워하는게 뭘까. 군중시위? 그도 그렇겠지만 알게 모르게 대중의 저항의식을 고취시키는 것들도 두려운 존재 아닐까. 아이들까지 따라 부르는 구전가요 같은 것 말이다.

일제시대도 그랬다. 3.1운동처럼 전국의 거리를 메운 직접적 항일운동도 있었지만 은근히 항일.독립정신을 고취시키는 노래.연극.영화들도 있었다.

당시는 요즘처럼 영화나 연극을 대중이 쉽게 접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에 항일 문화운동의 선구는 노래였다.

31년 레코드로 나오자마자 일제에 의해 판매금지당한 홍난파의 '봉선화' 나 32년 아예 부르지조차 못하게 된 '황성옛터' 가 대표적인 예. '조선 아가야' 를 보자. '조선 아가야 잠잘자거라/검은 손이 춤춘다 너를 잡아 가련다' (33년.작자 미상) . '잠잘자거라' 지만 사실은 '깨어나라' 는 의미. 이 노래를 부른 채규엽은 공연에 일본 군복을 입고 나오는 등의 문제로 친일파로 보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반면 그는 도쿄로 유학간 우리 학생들도 뒤에서 많이 돕는 등 애국적인 일도 했다.

'우리소리를 우습게 보지 말라' 는 TV강연으로 유명한 민속연구가 김준호 (35) 씨는 "각설이 타령도 바뀌었다" 고 주장한다.

각설이 타령은 '얼~씨구씨구 들어간다/절~씨구씨구 들어간다' 하는 후렴을 제외하고는 지방이나 시기에 따라 가사가 자주 변했다.

그 부분이 일제시대는 이렇게 불렸다는 것. '일등공신 이완용아/삼천리 이강산을/사백만원에 팔아서/오적이 되었구나…' . 일제시대 연극은 국내 최고의 엘리트라 할만한 지식인들이 이끌었다.

따라서 자연히 극속에 저항적인 내용을 담는 경우가 많았다.

유치진의 '소' 가 대표적인 경우. 일본 지주의 한국농민 착취가 적나라하게 그려진 이 연극은 36년 국내에서 공연하려했으나 대본검열에 걸려 무대에 오르지조차 못했다.

또 이로인해 유치진은 옥고까지 치렀다.

20년대를 대표하는 신파극으로 꼽히는 '아리랑' .이 연극도 결국은 공연정지를 당했다.

일제에 땅을 뺏기고 결국 만주로 떠나가는 농민들의 모습을 그린 내용. 항일.독립정신이 깃든 연극이 많아지자 일제는 사전 대본검열은 물론 실제 공연에까지 참석해 검열했다.

혹시 대본에 없던 내용을 끼워넣을까 우려해서다.

항일정신을 담은 영화들은 대부분 26년부터 32년사이에 만들어졌다.

이시기는 3.1운동등의 영향으로 일제가 유화정책을 벌였기에 이런 영화 제작이 가능했다.

나운규 감독의 '아리랑' '사랑을 찾아서' '들쥐' , 이규환 감독의 '임자없는 나룻배' 등이 대표작. '사랑을 찾아서' 는 연극 '소' 처럼 만주로 건너간 사람의 이야기. 만주에서 일본에 저항할 세력을 키운다는 것이 은유적으로 표현했다고 평가 받는 작품이다.

또 원제는 '두만강을 찾아서' 였으나 검열로 제목이 바뀌기도 했다.

이밖에도 강호 감독의 '지하촌' , 김유영 감독의 '화륜' 등도 항일계통의 영화로 분류된다.

그러나 불행히도 필름이 남아 있는 경우는 전혀 없고 다만 당시의 신문기사등을 통해 내용과 평이 간단히 전해질 뿐이다.

정재왈·이은주·권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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