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 사랑이 있었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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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호 12면

자, 위로 줄줄이 딸이 네 명, 막내는 아들 쌍둥이. 한때 고시공부를 하다 전교생이 60명인 산골 분교의 선생님이 된 아빠, 자신이 잦은 병치레를 하면서도 큰 병을 앓고 난 후 걷지 못하는 셋째 딸 생각에 애면글면하는 엄마.

김성희 기자의 BOOK KEY

『짱뚱이네 육남매』(오진희 지음, 웅진지식하우스)란 책은 이 가족 중 씩씩한 둘째 딸이 그린 가족사입니다. 어떻습니까. 그림이 그려지지 않습니까. 굳이 우리의 1960, 70년대를 떠올리지 않더라도 이 가족이 겪은 신산스러운 이야기가 떠오를 겁니다. 그런데 꼭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오사바사하지는 않지만 따뜻하고 뭉클한 이야기가 그득합니다.

지은이는 외모 콤플렉스가 심했답니다. 주위 사람들이 “아이고, 지비 딸들은 다 이뿌요, 잉” 그러면 엄마가 “아이고, 야는 아니오. 우리 둘째는 메주요”라 답했다니까요. 그런 지은이가 위로받은 이야기가 나옵니다.

초등학교 시절 성적이 나쁜 통지표에 부모 몰래 도장을 찍어 가려고 도장을 찾다가 아빠가 엄마에게 보낸 연애편지를 찾아냅니다. 결혼을 한 뒤 뒤늦게 군대에 간 아빠가 딸을 낳았다는 소식에 “여보, 우리 딸 이름이 진희라고요? 정말 예쁘겠구려. 여기 당신과 우리 딸에게 전방에서 가장 먼저 피어난 버드나무 잎을 보내오”라고 써 보낸 글을 보고 지은이는 당당해졌답니다. 누가 메주라고 놀려도 ‘나는 우리 아빠의 사랑하는 둘째 딸이니까’ 그러면서요.

사랑하면서, 아니 사랑하기 때문에 상처 주고 속상해하는 우리네 세상살이에서 종종 만나는 장면도 있습니다.지방에 사는 엄마가 서울 큰언니와 함께 쇼핑을 합니다. 꼬부랑 할머니가 예쁜 옷을 사러 나온 길이었는데 동행한 며느리한테 절절매는 모습이 딸의 속을 뒤집어 놓았답니다. 그래 맏딸이 퍼붓습니다.

“엄마는 왜 딸들한테는 지독하면서 밥 한번 못 얻어먹은 며느리한테는 절절매느냐고! 돈은 다 내가 내는데 ‘아이고 우리 며느리 다리 아파서 어떻게 하느냐’ 그러시느냐고!

아빠의 ‘연애 소동’, 진돗개 2세와 사위의 비교(이건 차마 이야기 못 하겠네요) 등 다양한 일화 속에 눈길을 끄는 것은 아버지 모습입니다. 삼수를 하는 막내아들 데리고 시가지가 보이는 앞산에 올라간 아빠. 아들에게 사람들이 어떻게 보이냐고 묻습니다. 막내가 “잘 보이지도 않네요”라고 하자 아빠가 일러 줍니다.

“긍게 말이다. 사람들이 개미만 하게 보이지. 그런디 지금 저 사람들은 옷을 뭘 입었느니, 누가 어쨌느니 저쨌느니 그러고 있을 것이다. 이 위에서 보면 그런 건 아무것도 안 보이는디 말여.” 그러면서 말 없는 아들에게 “너무 걱정 말고 네가 최선을 다하면 그걸로 되는 거시여. 남들 시선 생각할 필요 하나도 없어”라고 덧붙입니다.
이 정도면 어지간한 잠언집 뺨치는 수준 아닌가요?

망둥이는 잡아도 짱뚱어는 못 잡는다는 옛말이 있답니다. 갯벌에 사는 망둑엇과의 바닷물고기인 짱뚱어가 어디로 튈지 모를 정도로 활동력이 강해 이런 이야기가 나온 거라네요. 볼이 볼록했던 지은이의 어릴 적 별명이 바로 짱뚱어였답니다. 그래 그런지 글은 여기저기로 튑니다. 그런데 책을 덮으니 “어른이 된다고 해서 모든 것을 다 아는 것도, 모든 일을 다 올바르게 처리하는 것도 아니라는 걸 알았다”는 구절이 남았습니다.


경력 27년차 기자로 고려대 초빙교수를 거쳐 출판을 맡고 있다. 특기 책 읽기.『맛있는 책읽기』등 3권의 책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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