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 그 많던 일본 관광객들 어디로 갔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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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15일 오후 서울 명동 중앙로는 한산했다. 길을 걷는 쇼핑객은 대부분 한국인 커플들. 길거리 여기저기서 일본어를 쉽게 들을 수 있었던 지난달의 거리 풍경과는 확연히 달랐다.

“일본 손님이 확 빠졌어.”

길에서 설탕과자를 만들어 파는 이모(66·여)씨는 혀를 찼다. 이씨의 좌판엔 과자 20여 개가 쌓여 있었다. 하나에 1000원인 설탕과자는 대부분 일본인들이 사 먹었다고 한다. 이씨는 “지난달엔 낮에 두어 시간만 앉아 있어도 서른 개는 팔았는데, 요즘은 하루 종일 열 개도 못 판다”고 말했다.

명동의 일본인 관광 특수가 사그라들고 있다. 한때 100엔당 1600원대였던 엔화가치가 최근 1200~1300원대로 내리면서다. 이달 초 국내에서 신종 플루(인플루엔자A/H1N1) 확진환자가 나온 것도 관광 열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일본인 덕에 승승장구하던 명동 인근 백화점은 기세가 꺾였다. 유통업계의 기대를 모았던 골든위크(4월 26일~5월 10일) 실적이 예상보다 초라했다. 이 기간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 본점의 명품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5% 느는 데 그쳤다. 올 1, 2월 매출 신장률(지난해 동기 대비 117%)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롯데백화점 영업총괄팀 박우영 과장은 “환율이 1200원 수준을 오가면서 한국 쇼핑에 관심을 잃는 분위기”라며 “특히 단가가 비싼 명품류 매출이 눈에 띄게 줄었다”고 말했다.

명동의 중저가 화장품 가게도 환율 타격을 받고 있다. 명동 이니스프리 매장은 이달 들어 일본인 손님이 지난달의 절반 정도로 줄었다. 이곳의 BB크림은 1만5000원. 2월(월평균 환율 1546원)엔 870엔이면 살 수 있었지만, 지금(15일까지 월평균 환율 1288원)은 1048엔이 필요하다. 직원 민현주(30)씨는 “일본 손님은 한번 오면 10만원어치씩 선뜻 사가곤 했는데, 요즘은 5만~7만원 정도가 보통”이라고 말했다.

국내에선 신종 플루가 진정되고 있는 국면이지만, 일본인들은 완전히 경계심을 풀지 않고 있다. 하나투어인터내셔날 일본영업팀 최종태 차장은 “일본인들은 유난스럽다 싶을 만큼 위생관념이 철저한 것 같다”며 “이달 들어 여행 취소율이 15% 정도 된다”고 말했다. 명동에선 마스크를 쓰고 지나다니는 일본인들이 간간이 눈에 띄었다. 관광객 히노 구미코(44)는 “한국뿐 아니라 해외여행 자체를 자제하는 이들이 많다”고 전했다.

한국관광공사 차동영 홍보팀장은 “위기관리대책반을 구성해 한국 방문객 감소 추세를 파악하고 있다”며 “일본 현지 언론과 여행사·학교를 대상으로 한국의 방역 대책에 대해 적극적으로 알리고 있다”고 말했다.

임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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