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즐겨 읽기] 조각 같은 얼굴 뒤의 깡, 자존심, 자기관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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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배우 신성일, 시대를 위로하다
신성일·지승호 지음
알마, 344쪽, 1만2000원

 만약에 배우 신성일(72·사진)이 요즘의 20대 청년이라면 어느 사무실에선가 열심히 전화받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1962년 신상옥 감독이 운영하던 신필림에서 배역이 없어 빈둥거리던 신성일이 했던 일이 전화받기였기 때문이다. 그때 이 일을 얼마나 열심히 했던지 문화부 기자, 작가, 외부 감독, 신 감독의 지인의 목소리만 듣고도 누구인지를 분간했다는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난 밑바닥 생활부터 죽 올라온 배우”라고.

이 책은 ‘왕년의 무비스타’ 신성일이 전문 인터뷰어 지승호와 인터뷰하며 나눈 이야기를 담았다. 50년 동안 506편의 영화에서 주연을 맡았을 정도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그가 참 솔직하게 인생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신성일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1957년부터 지금까지의 한국 영화사가 더욱 생생하게 다가오고, 나아가 한국 문화사의 풍경까지도 읽힌다.

신상옥 감독이 지어준 그의 예명에는 ‘뉴스타 넘버원’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자존심이 강한 그는 신인 배우 모집 응모에 원서는 내지 않고 무작정 그 주변을 ‘기웃거렸을 뿐’이고, 그럼에도 운명처럼 2600여명의 지원자를 제치고 선발돼 배우가 됐다. 김기덕·하길종·이만희·유현목 감독 등 명감독 얘기도 흥미롭다. 배우들이 라면을 끓여먹을 때 혼자 불고기를 구워먹는 모 감독을 보며 “감독 저놈 나쁜 놈”이라고 욕했다면서도 치밀하게 콘티를 준비했던 그의 완벽주의에 대해서는 경외감을 표했다.

아내 엄앵란과의 사랑 이야기도 들려준다. “결정적으로 ‘배신’이라는 작품을 할 때 마음을 표시했지. 연기지만 결정적 표시를 거기서 한 거지. 호수 멀리서 보트를 타고 있는 장면인데, 거기서 진짜 키스를 해버린 겁니다.”

한때 만났던 다른 여인,1968년에 빨간 머스탱을 타고 다니고, 1970년에 이미 정계로부터 러브콜을 받은 이야기도 들려준다. 그는 정계에 발들여놓은 뒤 2005년 옥외광고물 업자로부터 1억 8700만원 받은 혐의로 징역 생활도 했다. 그러나 정계에 발들여놓은 자신의 결정에 후회없다고 했다.

신성일의 팬이 아니어도, 그가 출연한 영화를 본 적이 없더라도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즐기며 읽을 만한 책이다. 생각했던 것보다 ‘깡’과 ‘자존심’으로 버틴 그의 인생이 흥미롭고, 역시 의외로(?) ‘준비’‘관리’등에 철저한 점을 보게 된 것도 흥미롭다. 호떡을 팔고 전화받던 청년에서 무비스타, 국회의원으로, 이제는 은발이 되어 바라보는 그의 삶, 그의 시선이 그렇게 쉽게 만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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