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한 과정으로서의 통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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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오늘 취임식을 갖는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은 남북대화 재개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북한 당국도 자못 긍정적 반응을 보였으니 남북대화 전망이 밝은 듯 보인다.

차제에 우리는 통일을 평화.교류 및 협력을 달성하는 과정으로 보고 현실주의적으로 대비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통일은 이미 시작되고 있으므로 이 과정에서 우리는 일관성.실현가능성.국민적 합의 및 국제공조원칙을 실천해야 한다.

남북관계에서 우리가 추구하는 목표는 평화.교류협력 및 통일이다.

이것들은 하나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서는 실현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잊어선 안된다.

남과 북이 비록 이념과 체제를 달리하고 있지만 대화를 통해 평화공존과 교류.협력은 실현할 수 있다.

북이 만약 남과 긴장완화와 평화정착에 대한 협상을 재개해 1992년에 발효했던 기본합의서를 이행한다면 우리는 당면한 국난에도 불구하고 경제 및 외교지원을 제공해야할 것이다.

한반도 평화와 통일에 관한한 우리가 주도권을 행사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대북 (對北) 정책에는 네가지 원칙을 실천해야 한다.

첫째, 평화.협력 및 통일이란 목표의 일관성과 함께 정책집행에서도 일관성을 유지해야 한다.

평화와 신뢰구축에 기여할 수 있다면 대화는 물론 정상회담도 개최해야 한다.

4자회담도 평화장치를 구축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다.

앞으로 시도할 각종 대화와 협상은 분명한 전략지침에 근거해 상호간에 체계적 연관을 갖고 추진해야 한다.

남북관계는 주어진 현실과 가용재원에 입각해 실현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

새 정부가 이산가족상봉 및 서신교류를 촉구한 것은 인도주의적 차원이나 실현 가능성에서도 매우 바람직하다.

한편 굶주리고 있는 북한 사람, 특히 어린이들과 노약자들을 돕기 위해 우리는 세계식량계획 (WFP) 의 호소에도 성의를 보여야 할 것이다.

정부가 대북투자에서 시도하고 있는 정경 (政經) 분리 원칙도 북한이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한다면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이상으로 우리가 북한을 지원하는데는 수많은 제약이 가로놓여 있다.

북한이 개혁 및 개방을 실시할 의지를 갖고 남북경제회담에 응하지 않는한 우리가 대대적 경협계획을 추진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통일정책은 국민적 합의를 이뤄 초당적으로 실시해야 한다.

현재의 정국을 감안할 때 여야는 남북관계에 관한한 가급적 국내정치와 분리해 대결을 지양해야 한다.

대북협상도 법과 제도가 정한 절차를 통해 투명하게 행해야 언론과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특사교환도 헌법절차를 통해 거국적인 방법으로 실시해야 한다.

끝으로 우리는 대북관계에서 국제공조, 특히 한.미 공동계획을 지탱할 필요가 있다.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과정에 대해 우리는 미국과 중장기 공동계획을 재정비해야 한다.

한.미간에 비록 이견이 발생하더라도 양국은 철저한 사전협의를 통해 공동보조를 취해갈 때 신뢰에 근거한 동반자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역설적으로 한.미협조가 원만하게 진행될 때 남북관계가 개선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명심할 필요가 있다.

이상과 같은 자세로 남북관계를 관리해가되 당장 큰 성과를 기대하는 것은 금물이다.

지금까지 보도된 바에 의하면 북한의 대남 (對南) 정책에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징조는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한가지 분명한 현실은 남북관계를 개선하지 않고 북한은 대미 (對美) 및 대일 (對日) 관계를 정상화할 수 없으며 국제사회로부터 다량의 식량원조도 얻어낼 수 없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북한 당국은 종전에 내세웠던 전제조건들을 반복하면서도 남한 당국과 조심성 있게 대화를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 기회를 포착해 평화 및 협력과정을 촉진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결코 서두를 필요는 없지만 새 정부 출범과 함께 그동안 동결됐던 남북대화를 재개하는 것은 민족의 장래를 위해서도 매우 중요한 과제이기 때문이다.

안병준〈연세대 국제정치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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