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5년 국가를 피고로 하는 교과서검정 위헌소송을 도쿄지방재판소에 제기한 이후 ‘30년 재판’을 이끌며 일본 사회 전체의 성찰을 촉구하는 목탁으로 목청껏 울었다. 이에 호응한 교사·학부모·연구자·문화인·출판노조 등을 중심으로 국가를 상대로 한 싸움이 전국적으로 벌어졌다. 그 결과 1970년 ‘검정 불합격처분 취소’라는 승소 판결과 1997년 ‘난징(南京) 대학살’ 등 3개 부분 검정에 대해 일부 승소 판결을 받아내는 성과를 일구었다. 지금 그의 재판을 계승한 다카시마(高嶋) 교과서재판이 진행 중이고, 교과서 문제를 유엔 등 국제사회에 호소하거나, 평화학습을 위한 전쟁 유적 보존에 노력하는 전쟁유적보존전국네트워크와 같은 시민단체들이 활발히 활동 중이다. 우익세력이 쓴 지유샤(自由社)판 중학교 역사교과서가 검정을 통과해 왜곡교과서가 두 개로 늘어난 오늘. 1997년 3차 소송 상고심 변론을 위해 최고재판소에 입정하는 그(사진 가운데=지지통신 제공)와 그를 둘러싼 이들을 보며 화해와 공존의 가능성에 희망을 품는다. 40㎏의 왜소한 체구에 위장병을 앓는 병약한 몸으로 국가 권력에 맞서 32년간 투쟁하며 각성된 개체로 우뚝 섰던 이에나가. 그의 삶의 궤적은 개인의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보장하는 민주주의와 평화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일본 내 양심세력들과 우리 시민사회, 아니 아시아 여러 나라의 평화공존을 도모하는 모든 이에게 희망의 기억으로 다가선다.
허동현(경희대 학부대학장·한국근현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