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그때 오늘

‘일본의 양심’ 이에나가 사부로 교과서 왜곡 맞서 32년간 투쟁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41면

 이에나가 사부로(家永三郞, 1913~2002)는 침략의 과거사를 미화하려는 국가 권력에 맞서 싸운 일본의 양심이었다. 군국주의의 광기가 일본을 휩쓸던 시절 침묵하는 방관자의 삶을 살던 그가 일본이 져야 할 ‘전쟁책임’을 깨달은 것은 1950년대 들어서였다. 1955년 평화헌법 개정을 당헌으로 내건 자민당이 권력을 잡자, 재무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침략의 역사를 반성하는 역사교육에 제동을 걸기 시작했다. 더 이상 연구실에 앉아 있을 수 없었다. “나는 전쟁 중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고 헛되이 조국의 파괴를 방관하고 많은 동세대 동포의 죽음을 바라보기만 했던 기개 없는 인간이었다. 헌법을 공동화(空洞化)하려는 시도에 대해 국민 각자 각자가 힘을 다해 할 수 있는 대로 노력하는 것이, 특히 나같이 비참한 전쟁에서 죽지 않고 살아남은 세대의 인간에게 부과된 책무라고 생각한다. 법정에서 철저하게 싸워 이쪽의 주장을 법정 밖 국민에게 널리 호소해 ‘국민적 미신’의 타파를 위한 경종을 난타한다.”

1965년 국가를 피고로 하는 교과서검정 위헌소송을 도쿄지방재판소에 제기한 이후 ‘30년 재판’을 이끌며 일본 사회 전체의 성찰을 촉구하는 목탁으로 목청껏 울었다. 이에 호응한 교사·학부모·연구자·문화인·출판노조 등을 중심으로 국가를 상대로 한 싸움이 전국적으로 벌어졌다. 그 결과 1970년 ‘검정 불합격처분 취소’라는 승소 판결과 1997년 ‘난징(南京) 대학살’ 등 3개 부분 검정에 대해 일부 승소 판결을 받아내는 성과를 일구었다. 지금 그의 재판을 계승한 다카시마(高嶋) 교과서재판이 진행 중이고, 교과서 문제를 유엔 등 국제사회에 호소하거나, 평화학습을 위한 전쟁 유적 보존에 노력하는 전쟁유적보존전국네트워크와 같은 시민단체들이 활발히 활동 중이다. 우익세력이 쓴 지유샤(自由社)판 중학교 역사교과서가 검정을 통과해 왜곡교과서가 두 개로 늘어난 오늘. 1997년 3차 소송 상고심 변론을 위해 최고재판소에 입정하는 그(사진 가운데=지지통신 제공)와 그를 둘러싼 이들을 보며 화해와 공존의 가능성에 희망을 품는다. 40㎏의 왜소한 체구에 위장병을 앓는 병약한 몸으로 국가 권력에 맞서 32년간 투쟁하며 각성된 개체로 우뚝 섰던 이에나가. 그의 삶의 궤적은 개인의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보장하는 민주주의와 평화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일본 내 양심세력들과 우리 시민사회, 아니 아시아 여러 나라의 평화공존을 도모하는 모든 이에게 희망의 기억으로 다가선다.  

허동현(경희대 학부대학장·한국근현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