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의 크리스마스' 음악담당 조성우씨…교단에선 철학과 '예비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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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6면

개봉 열흘 만에 서울에서만 23만여명의 관객을 동원한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 마지막 부분에 흐르는 내레이션 한마디 - . “내 기억 속의 무수한 사진들처럼 사랑도 언젠가 추억으로 남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 당신만은 추억이 되질 않았습니다.

사랑을 간직한 채 떠날 수 있게 해준 당신께 고맙단 말을 남깁니다.” 나직한 목소리로 관객에게 건넨 이 대사는 이 영화의 음악을 만든 조성우 (35) 씨가 썼다.

그는 연세대 철학과 82학번으로 지난해 박사과정을 수료했으며 강의 경력만 7년째인 '예비교수님' 이다.

현재 연대 원주캠퍼스 문리대와 충북대 철학과에 출강 중이지만 이미 '결혼 만들기' (94년) 나 '런 어웨이' (96년) 등 극영화와 '고철을 위하여' '심우도' 등 단편 영화에서 지명도를 쌓은 전문음악인이기도 하다.

그는 '8월의…' 음악을 만드는 동안 틈틈이 '충족이유율의 기원에 관한 연구' 라는 학위논문을 준비했다. 초고는 얼추 완성이 됐고 현재 마무리 작업 중이다.

지난해말에는 '데리다와 비트겐슈타인' (민음사) 이라는 책도 번역했다. 그만큼 영화음악과 그가 공부하는 학문의 비중은 선뜻 순위를 정할 수가 없다는 얘기다.

“철학이나 음악 모두 결국은 표현하는 것입니다.

하나는 언어와 논리로, 다른 하나는 선율과 리듬을 이용해 '무엇' 을 찾아간다는 점이 닮았어요. ” “ '8월의…' 는 삶과 죽음이 우리의 일상에서 갖는 의미와 느낌을 포착한 영화입니다.

시종일관 지극히 잔잔하고 담담하게 흘러가지만 그 이면에 깔린 문제는 가장 기본적이면서 철학적인 것들이지요. 음악뿐 아니라 시나리오 작업에 참여하면서 스태프들과 함께 죽음과 일상이 어떻게 연결돼 있는가에 대해 참 많은 대화를 나눴습니다.

비록 영화에는 보이지 않고 음악엔 들리진 않지만 이러한 상호작용이 절제된 형태로 작품에 담겼으리라 믿습니다.”

주 (主) 테마곡인 '사진처럼' 이 주는 조용하지만 가슴 먹먹한 감동은 바로 이러한 과정의 산물일 것이다.

하지만 OST앨범의 판매는 그닥 신통치 않다.

영화음악이 배우나 감독 못지 않게 주목을 받는 미국.유럽과는 달리 아직 우리나라에선 음악에만 관심을 가져 음반을 구입하는 층이 얇기 때문이다.

물론 귀에 익은 올드 팝을 전면에 띄워 영화와 음반이 동반히트하는 안전한 방법을 택할 수도 있지만 그는 “무엇보다도 순수창작이 우선하는 100% 국산화가 중요하다” 고 강조한다.

개인적으로는 컴퓨터작업에 의존하기보다 오케스트라를 불러 녹음하는 걸 선호하는 탓에 비용문제가 항상 골칫거리다.

“영화의 세세한 부분들을 살려주는 음악이 좋은 음악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도 장면과 음악을 따로 떼어내 생각하지 않는, 영화 안에 녹아들어간 음악을 하고 싶어요. ” '철학이 담긴 음악' 을 고민하는 그와 '8월의…' 는 그런 의미에서 썩 잘 어울리는 짝이 아니었던가 싶다.

글=기선민·사진=신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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