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트트랙 2관왕 전이경]"국수집 딸 또 큰일 해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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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피니시 라인을 10여m 앞두고 앞서가던 중국 양양선수의 왼쪽어깨 옆으로 비치는 한줄기 빛. 그 빛은 어둠의 시대에 전국민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던지는 '금빛' 이었다.

전이경 선수는 그 빛을 놓치지 않고 파고 들었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 그녀는 결승라인을 향해 몸을 던졌다.

"와, 우리 이경이가 또 해냈다."

'장한 대한의 딸' 전이경 (22.연세대3) 선수가 21일 밤 일본 나가노 화이트링에서 마지막 스퍼트, 오른발을 쭉 내밀어 간발의 차로 다시 금메달을 따내는 순간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장수자 국시' 에 모인 30여명의 친지들은 일제히 기쁨의 환호성을 질렀다.

전선수의 아버지 전우성 (49) 씨가 운영하는 음식점 '장수자 국시' 는 전선수의 할머니 장수자 (78) 씨의 이름을 딴 것. 전우성씨는 "컨디션이 좋다고는 했지만 이처럼 큰일을 해낼 줄은 몰랐다" 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전선수가 여자 쇼트트랙 1천m에서 한국선수단에 안겨준 세번째 금메달은 쇼트트랙 세계랭킹 종합1위의 명성에 어울리는, 그야말로 '준비된 시대' 에 맞는 '준비된 금메달' 이었다.

그러나 그 금메달은 뼈를 깎는 고통과 처절한 자신과의 싸움을 통해 얻어진 쾌거였다.

전선수는 3세때 음식물이 위 입구에 걸려 내려가지 않는 위협착증이라는 병을 얻어 "운동을 하면 건강을 회복할 수 있을 것" 이라는 의사의 말을 듣고 얼음판에서 걸음마를 시작했다.

빙상과 수영을 병행하며 건강을 회복한 그녀는 신반포중 1년때인 88년 쇼트트랙에 입문했고 92년 세계팀선수권에서 3개의 금메달을 따낸 뒤 94년 릴레함메르 겨울올림픽에서 2관왕에 오르며 세계정상에 우뚝 섰다.

이번 올림픽에서 금2.동1개를 보탠 그녀는 이제 명실상부한 '쇼트트랙의 국보' 다.

통산 금메달 4개로 양궁의 김수녕 (3개) 선수가 세운 기록을 깨며 역대 한국 최다 금메달 획득자로 기억되게 됐다.

전선수의 장래 희망은 한국 최초의 여성 국제올림픽위원회 (IOC) 위원. 스물둘의 나이탓에 "이젠 은퇴할 때가 되지 않았느냐" 는 주위의 얘기도 있지만 그녀는 "서양선수들은 서른살까지도 운동을 한다" 며 또 한번의 도약을 준비한다.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겨울올림픽. 그녀는 다시 '자신과의 싸움' 에 이미 돌입했다.

이태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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