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두 집안, 악기로 말하고 악기와 논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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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6면

바이올리니스트 넬슨 리(29)는 “말보다 음악을 먼저 배웠던 것 같다”며 어린 시절을 설명했다. 어머니는 문용희(60) 미국 피바디 음대 교수, 아버지는 이대욱(61) 한양대 음대 교수, 부모 모두 피아니스트다.

‘2009 서울 스프링 실내악 축제’에서 연주하기 위해 한국에 온 넬슨 리는 “부모님은 하루종일 피아노 앞에 앉아 있었다”고 기억했다. 집에서 늘 피아노 소리가 들렸고, 연습하지 않을 때는 오페라·교향곡 등 음반을 틀어놔 음악이 귓전을 떠날 새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만큼 넬슨 리 집에서 음악은 자연스러운 언어다. “세 살에 바이올린을 시작했고, 아무 스트레스 없이 악기를 연주했다”는 고백이 예사롭게 들린다. 비슷한 나이에 피아노·바이올린 등을 배우기 시작한 그의 쌍둥이 누나, 알리샤와 안드레아 역시 각각 클라리넷과 첼로 연주자의 길을 걷고 있다.

미국 현악4중주단 ‘주피터 콰르텟’. 왼쪽부터 피아니스트 부모와 클라리넷·첼로 연주자 누이를 둔 넬슨 리(바이올린), 메간 프리보글(바이올린), 메간의 친 언니인 리즈(비올라), 메간의 남편 대니얼 맥도너프(첼로). 음악으로 소통하는 가족을 둔 연주자들이다.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 제공]


늘 함께 음악을 했기 때문일까, 넬슨 리는 현재 앙상블 전문 연주자다. 2001년 활동을 시작한 ‘주피터 현악4중주단’ 리더로 한 해 45~50회 연주를 소화하고 있다. 미국 클리블랜드 음악원에서 솔리스트로 전공을 시작했지만 뉴 잉글랜드 음악원에서는 실내악으로 학위를 받았다. “함께 연주할 때의 조화와 규칙에 매료됐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2002년 피바디 음대 역사상 최초 한국인 교수로 임용됐던 어머니와, 줄리아드 음대를 졸업한 후 카네기 홀에서 지휘자로도 데뷔한 아버지는 그의 음악 공부에 어떤 영향을 줬을까. “부모님은 한번도 연습이나 레슨 등을 어떻게 하라고 시킨 적이 없다”는 것이 넬슨 리의 설명이다. 그는 “당신들이 음악이 얼마나 힘든지 알기 때문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때문에 음악을 놀이로 알던 넬슨 리는 대학에 가기 직전 전공을 결정했고, 그의 누이들도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음악 가문’의 봄 무대=“음악 가족이란 울타리 안에서 살아가는 것도 생각보다 아주 평범한 일”이라며 웃음짓는 넬슨 리의 주피터 현악4중주단은 17·18일 서울 스프링 실내악 축제에서 베토벤 현악4중주 작품 네 곡을 연주한다.

이 실내악단 역시 단어 그대로 ‘가족적’이다. 제2바이올린을 맡고 있는 메간 프리보글(29)의 언니가 비올라를, 남편이 첼로를 맡고 있다. 주피터 현악4중주단은 2005년 ‘영 콘서트 아티스트’에서 국제 오디션상을, 2008년 ‘에이버리 피셔 커리어 그랜트’를수상한 경력이 있는 ‘실력파 가족’이다.

또 다른 막강한 음악 가족도 서울을 찾았다. 전설적인 바이올리니스트 예후디 메뉴힌(1916∼99)의 아들 제레미 메뉴힌(50)과 그의 부인 무키 리 메뉴힌이다. 피아니스트라는 공통점으로 만난 이 부부는 15일 오후 7시 30분 서울 세종로 세종문화회관 세종체임버홀에서 모차르트의 ‘네 손을 위한 소나타’를 함께 연주한다. 제레미 메뉴힌은 25세에 베를린 필하모닉과의 협연 이후 세계 음악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피아니스트다. 한국 태생인 아내는 유럽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들 공연은 음악가들이 북적거리는 집에서 성장해 연주자로 활동하는 사람들의 삶을 만날 수 있는 드문 기회다.

◆2009 서울 스프링 실내악 축제=18일까지 매일 오후 7시 30분 세종문화회관 세종체임버홀. 02-712-4879.

김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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