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선수들 마음 훔쳐 신뢰 쌓아라 … 전북 축구시대 여는 ‘강희대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5면

벤치에서 선수들의 플레이를 지켜보고 있는 최강희 감독. 언제나 셔츠 맨 위 단추까지 채운 빈틈없는 모습이다. [중앙포토]

서울 우신고 졸. 프로축구 전북 현대 최강희(50) 감독의 최종 학력이다. 그는 소위 명문대 출신의 축구 엘리트는 아니다. 하지만 성적은 학벌순이 아니다. K-리그 국내 감독 12명 중 10명이 내로라하는 대학을 나왔지만 리그 순위에서 최 감독을 앞선 감독은 없다.

전북은 K-리그에서 6승2무로 선두를 질주하고 있다. 8경기에 20골로 15개 구단 가운데 가장 많은 골을 넣었고 실점은 5골에 불과하다. 최 감독은 이미 2006년 전북을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정상으로 이끌며 지도자로서 능력을 일찌감치 입증했다. 팬들은 그를 ‘강희대제(康熙大帝)’라 부른다. 중국인들이 가장 숭앙하는 청나라 황제다.

최 감독은 “우연히 한자 이름이 똑같아 생긴 과분한 별명이다.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때 중국 클럽을 연거푸 꺾자 중국 언론에서 붙인 것”이라며 껄껄 웃었다.

축구계 은어에 ‘펌프질’이란 게 있다. 때로는 다그치고, 때로는 얼러가며 선수들 가슴에 불을 댕기는 요령을 뜻한다. 최 감독은 누구보다 ‘펌프질’에 능하다. 최태욱(28)·이동국(30) 등 다른 구단에서 죽을 쑤던 선수들이 전북에 와서 전성기 기량을 되찾고 부활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최 감독을 가까이서 지켜본 손지훈 전북 홍보팀장은 “선수들의 개성에 따라 대하는 태도가 다 다르다. 그런데 그게 아주 절묘하다”고 말했다. 최태욱을 향해서는 채찍과 당근을 번갈아 사용했다.

태클 하나 제대로 못 하는 심약한 성격을 바꾸기 위해 기자들 앞에서 대놓고 비난하기도 했고, 2군행을 지시하기도 했다. 최태욱이 석 장이나 되는 장문의 편지로 감독의 마음문을 노크했을 때는 똑같은 분량으로 답장을 보내 감동시켰다. 최태욱은 이번 시즌 5골·2도움을 기록 중이다.

프리미어리그 미들즈브러와 성남 일화에서 만신창이가 돼 내려온 이동국에게는 “10경기 연속 혹은 그 이상 골을 못 넣어도 상관없다. 출장 기회를 충분히 줄 테니 마음 푹 놓고 뛰라”고 무한 신뢰를 보냈다. 이동국은 6골로 정규리그 득점 랭킹 1위다. “선수마다 대하는 태도가 그렇게 달라도 되느냐”고 묻자 최 감독은 “성격이 다 다른데 당연한 거 아니냐”며 “방법은 다르지만 결국 서로 신뢰를 쌓는다는 건 똑같다”고 말했다.

그가 심리전에 능한 건 남들이 겪지 못한 곡절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고교 졸업 후 대학에 못 가 은퇴를 생각하기도 했고, 일반 군대를 갈 뻔하다 가까스로 충의(육군 축구단)에 입단해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그는 “친구를 워낙 좋아해 노는 데 바빴고, 1987년 스물여덟에 결혼하고 나서야 정신 차리고 운동을 했다”고 털어놓았다. 최씨에 곱슬머리에 옥니이기까지 한 그는 고집도 세 주변과 충돌도 자주 빚었다. 그런 시련과 경험들이 피가 되고 살이 됐다.

이철근 전북 단장은 “위기 때도 꿈쩍하지 않고, 잘나갈 때도 그리 달라지는 게 없다”고 평했다. “전북 상승세가 무섭네요”라고 말을 건네자 최 감독은 “이제 겨우 시즌이 4분의 1 정도 지났는데…”라며 특유의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이해준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