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구도 사진처럼 그게 회화의 특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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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담배 피우는 먼로, 2008, 캔버스에 유채, 194×259㎝

 “눈은 보는 것이기도 하지만 우리를 들키게도 한다. 가장 잘 감정을 드러내며, 남과 교감하게 만드는 게 눈이다.”

2년 만에 개인전을 여는 강형구(55)씨는 얼굴에 대해 할 말이 많다. 그는 인물화의 귀재, 드물게 자화상까지 팔리는 화가다. 메릴린 먼로, 앤디 워홀, 오드리 헵번 등 시대를 대표하는 문화 아이콘 얼굴을 대형 캔버스에 사진처럼 그린 인물화가 장기다.

지인들은 한때 그를 ‘팔포’라고 불렀다. ‘팔기를 포기했다’는 뜻이다. 중앙대 회화과 졸업 후 9년쯤 직장 생활을 하고 화랑도 운영했다. 뒤늦게 홀로 틀어박혀 10년간 도 닦듯 2m 이상 높이의 대형 초상화를 그려 첫 개인전을 연 게 2001년이었다. 초록 눈을 한 반 고흐의 대형 초상화가 2007년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서 경합 끝에 5억5000만원에 팔리면서 이름을 알렸다. 대상을 그대로 옮긴 것 같지만 강조와 왜곡을 통해 인물의 재현을 넘어서는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그래서 그는 “극사실주의라는 말은 내게 어울리지 않는다. 나는 허구마저도 사진처럼 그릴 수 있는 회화의 특권을 지향한다. 내 그림은 극사실주의의 대척점인 허구를 그리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서울 소격동 아라리오 갤러리 서울점에서 17일까지, 미국 뉴욕점에서 6월 20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에는 알루미늄판을 이용한 새 시리즈를 선보인다. 아크릴 물감은 물론 못·드릴·면봉 등 온갖 도구를 이용해 인물의 잔주름·솜털·머리칼을 한층 더 세밀하게 묘사했다. 강씨는 “알루미늄판은 아침 저녁 빛에 따라 다르고, 배경에 따라 다른 색의 얼이 비친다. 먼로의 금발을 표현하기에도 최고의 재료더라”라고 이 노동 집약적 작업을 자랑했다. 02-723-6190.

권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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