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월드컵 경기장 거품 빼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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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국제통화기금 (IMF) 사태 이전의 월드컵 축구장 건설계획은 전면 재검토돼야 한다.

총체적인 국가 위기 속에서 근로자들은 정리해고와 감봉으로 생존마저 위협받고 있다.

또 하루에 수백개의 기업이 쓰러지고 부도를 면한 기업도 30~50%의 사업 축소와 구조조정을 통해 살아남기에 혼신의 노력을 다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월드컵조직위가 주도하고 있는 2002년 월드컵 개최 계획을 면밀히 따져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 많다.

우선 10개 도시에서 월드컵 경기를 개최하려는 것은 사업성.경제성 등을 고려했다기보다 일본의 10개 도시 개최 계획과 구색을 맞추는 데 급급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최근의 IMF사태를 논외로 하더라도 인구 4천5백만명, 개인소득 1만달러 (IMF 사태로 절반으로 줄어듦)에 불과한 한국이 인구 1억2천만명, 개인소득 3만5천달러의 일본과 비슷한 개최 계획을 세운 것은 교만과 허세일 뿐이기 때문이다.

IMF 시대가 요구하는 것은 이같은 거품을 제거하는 것이다.

일본과 공동 개최하는 2002년 월드컵 총 경기수는 64게임으로 한국이 유치할 게임은 32게임에 불과하다.

월드컵조직위가 개최 도시로 10개 도시를 선정한 만큼 한 경기장에서 3~4게임을 치른다는 계산이다.

똑같은 경기수로 치러지는 98프랑스 월드컵의 경우 모두 10개 구장에서 경기장당 6~7게임이 열리는 것과 비교할 때 경제성은 절반에 불과하다.

또한 잠실 주경기장의 경우 축구.육상대회 등 연간 경기 개최일수가 92년 19일, 93년 15일, 94년 15일, 95년 21일로 5년간 연 평균 개최일수가 18.4일이다.

경기장 규모가 6만5천석으로 지나치게 큰데다 천연잔디를 보호하기 위해 경기후 1주일 이상 휴장해야 하는 등 경기장 유지관리가 까다롭기 때문이다.

최근 5년간 65억원의 적자를 기록하는 등 서울시가 잠실 경기장 관리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는 보도에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잠실 경기장 운영실태는 앞으로 상암 경기장 등 신설 월드컵 경기장의 운영실태를 짐작케 한다.

수천억원을 투자해 경기장을 건설한다 해도 월드컵이 끝나고 나면 전국적으로 수백억원의 적자를 내는 애물단지로 전락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같은 적자는 모두 시민 세금 몫이라는 점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개최도시로 선정된 수원시는 당초 재정 부담을 약속했던 삼성전자가 이의 포기의사를 밝혔고 전주시와 서귀포시 역시 재정부담을 이유로 시민 반발이 확산되고 있다.

서울시 역시 정부가 30%, 축구협회 및 단체가 40%등 총 70% 이상의 재정을 지원하지 않으면 상암 경기장 건설은 곤란하다는 입장이다.

잠실 주경기장이나 뚝섬 돔구장이 월드컵 축구 경기에 적합치 않다는 조직위원회의 주장도 설득력이 부족하다.

국제축구연맹 (FIFA) 은 월드컵 개최 조사차 방한 때 서울의 잠실 올림픽 주경기장을 보고 '원더풀' 이라며 만족감을 표시했다.

축구장과 관람석간 거리가 먼 문제 등 FIFA 규정에 관한 문제도 4백억~5백억원을 투자해 시설을 개수하면 훌륭한 주경기장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월드컵 유치계획서에서도 밝히고 있다.

또 FIFA 규정에 맞추어 6천억원이나 투자, 뚝섬에 다목적 돔구장을 건설하고 있지 않은가.

이제 무엇을 망설이는가.

축구인들의 열망은 잘 알고 있다.

나도 나라를 사랑하는 만큼 축구를 사랑한다.

또한 축구인들의 헌신과 노력을 존경한다.

그러나 살아남는 것이 우선이다.

월드컵 개최 도시를 절반으로 줄이고 상암 경기장을 백지화해 4조5천억원중 2조원 이상을 절약, 하루 수백개씩 무너져가는 중소기업 도산 방지 및 실업대책에 활용해야 한다.

졸지에 직장을 잃고 방황하는 수십만 근로자들의 쓰라린 현실을 외면해서는 안될 것이다.

정치가 아닌 경제논리로 접근하면 해답은 너무 자명하다.

알뜰하고 경제적인 월드컵이 바로 그것이다.

이제 우리는 사치와 교만을 과감히 떨쳐버려야 할 것이다.

정대철 〈국민회의 부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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