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민의 영어시험' 토익, 취업·군입대까지 영향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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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대학으로 가는 수능보다 더 커보이는 시험이 있다.

'전국민의 영어시험' 이된 토익 (TOEIC) 이 바로 그것이다.

입사.승진.군입대는 물론 대학 입학과 졸업까지 토익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그러나 끊이지 않는 잡음들. 평가의 실효성, 외화 유출 등을 둘러싼 논란에도 불구하고 과열현상은 수그러들지 않는다.

79년 일본의 의뢰로 미국의 교육평가기관 ETS (Educational Testing Service)가 만든 이 시험이 우리나라에 상륙한 건 82년. 당시엔 미국인의 실생활을 소재로 한 듣기평가와 독해문제가 살아있는 영어실력을 측정하기에 손색이 없다는 평을 들었다.

조금씩 응시인원이 늘던 가운데 문민정부가 세계화 구호를 내놓자 응시자는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했다.

규모는 순식간에 일본을 앞질러 약 30개 국가에서 시행중인 이 시험 응시자의 40% (연간 약 70만명)가 한국사람인 상황이 됐다.

물론 토익을 계기로 영어실력이 쑥쑥 는다면 반가운 일이고 ETS의 희망도 대충 그런 것일 게다.

그러나 어려서부터 사지선다에 길들여진 우리나라 사람들은 토익에 놀라운 적응력을 과시하기 시작했다.

“듣기평가 땐 다른 사람의 움직임을 주시하라. 일제히 연필이 움직이는 지문이 답이다.”

“숫자가 나오면 무조건 메모하라.”

“듣기평가에선 청취 전에 문제를 읽어야 한다.”

각종 비법에 이어 족집게 강의까지 등장했다.

지난해 7월부터 10월까지 4차례 시험으로 1백20점을 끌어올린 이대 소비자인간발달학과 4년 고모 (23) 씨는 “학원에서 시험요령 강의와 체계적 영어지식 강의를 모두 들어봤는데,점수 올리기엔 단연 요령강의의 효과가 컸다” 고 의견을 말한다.

이 와중에 묘한 사건이 생겼다.

서울대 약대 출신의 토익강사 고성규 (28) 씨가 지난해말 몇몇 일간지에 “토익에 정답이 같은 문제가 반복적으로 출제되고 있다” 는 광고를 게재하고 답을 분석한 책을 펴낸 것. 그는 “61회 시험과 65회 시험의 116번문제 정답이 모두evaluation, 60.65회의 137번은 transactions" 등 94문제를 예시했다.

1회분 토익 문항이 모두 2백개인 점을 감안하면 놀라운 숫자가 아닐 수 없다.

ETS측은 즉각 저작권 침해관련 소송을 제기했고 책은 판매할 수 없게 됐다.

고씨는 “시험경향을 분석하기 위해 답을 적어나온 것은 사실” 이라며 “국제교류진흥회 토익위원회라는 비영리재단을 내세워 관련정보.시장을 사실상 독점하고 막대한 이익을 취하는 시사영어사의 태도가 문제의 근본” 이라고 주장했다.

뒤이어 외화유출에 대한 문제가 불거졌다.

지난해 18억원가량의 로열티가 지급되는 등 매년 막대한 달러가 날아간다는 지적. 일본에선 '에이켄 (英檢)' 이라는 자체 어학시험으로 외화유출을 막고 있다는 사례도 소개됐다.

응시인원이 연간 10만명도 안되는 일본어 시험의 경우 NPT.JPT.일본어능력시험 등 여러종류가 질적 경쟁을 벌이고 있는 것과 대비되기도 한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서울대 어학연구소는 얼마전 우리 실정에 맞는 새로운 영어시험 (SNUCREPT) 을 개발했다고 발표했다.

교육부는 이 시험의 확대로 토익.토플을 대체해 연간 약7백만달러의 외화를 절약하겠다는 계획을 서울대측에 제시했다.

그러나 국제교류진흥회측의 입장은 다르다.

조창호 (33) 대리의 말 - “각계 전문가들이 수십년동안 축적해온 ETS의 측정.평가 노하우를 단기간에 따라잡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공정.객관성 유지등을 위해선 한번 시험에 4천명 가량의 운영인력이 필요한데 그것은 하루아침에 이룰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대혼란도 생길 수 있지요.” 일본 요미우리신문 우에이치로 (宇惠一郎) 서울지사장은 “일본의 에이켄을 토익 대체수단으로 보는 견해는 옳지 않은 것 같다” 며 “두 시험은 각각 나름대로의 평가기준이 되고 있다” 는 소견을 밝혔다.

그는 또 “일본에선 이 시험들이 취업에 별 영향을 주지 않기 때문에 과열문제는 없다” 고 덧붙였다.

이같은 논란속에 빠르면 다음달, '서울대 영어시험' 이 첫선을 보인다.

서울대측은 “한국통신 직원들이 첫 대상이 될 것” 이라고 밝혔다.

기업체들의 요청이 쇄도하고 있고, 각 대학에서도 문의가 잇따라 새로운 시험은 빠르게 확산될 조짐이다.

그러나 한 교육부 관계자의 “올해안에 어떻게든 윤곽을 잡겠다는 방침 외엔 뚜렷한 게 아직 없다” 는 말에 불안감은 여전하다.

강주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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