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워즈는 누구] 준수한 외모·언변 '골든 보이' 애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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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세네카에서 직물공장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난 존 에드워즈 상원의원은 노스캐롤라이나 법대 재학시절 마루 청소로 학비를 벌어야 했을 만큼 가난에 시달렸다.

졸업 후 변호사가 된 그는 32세 때던 85년 병원에서 뇌를 손상당한 6세 여아를 구하기 위한 650만달러짜리 소송에서 이기면서 순식간에 가난에서 벗어났다.

그는 그 이후 재판마다 승소를 거듭하면서 90년에는 가장 뛰어난 변호사 100명으로 구성되는 '이너 서클'의 최연소(37세) 회원이 됐다. 자신의 명성을 바탕으로 에드워즈는 93년 자신의 이름을 딴 로펌을 설립했다.

그러나 시련은 있었다. 96년 자신이 운전하던 차가 전복되면서 16세 아들이 숨졌다. 그때 에드워즈는 홀연 "사회를 위해 더 큰 일을 하자"고 다짐했다.

이 약속대로 그는 98년 노스캐롤라이나 상원의원 선거에 도전해 51.2%의 압도적인 지지율로 당선됐다.

당시 그는 공직 경험이 전무한 애송이 정치인이었고, 노스캐롤라이나주는 76년 이래 민주당 출신이 당선된 적이 없는 공화당의 뒷마당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청중을 들었다놨다하는 언변, 활기찬 제스처, 잘생긴 외모 등을 앞세워 이변을 연출하는 데 성공했다. 언론은 그를 '골든 보이' '미국 정치계 최고의 섹시남' 등으로 부르며 열광했다.

노스캐롤라이나 법대 선배로 4년 연상인 부인 엘리자베스 역시 변호사다. 그녀는 48세에 딸 엠마, 50세에 아들 잭을 낳아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에드워즈 상원의원은 대학시절 월남전과 닉슨 행정부에 반대운동을 펼치다 결국 71년 입대를 신청했으나 제비뽑기 끝에 군징집이 면제됐다.

워싱턴=강찬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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