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풍지대 홍콩·싱가포르에도 금융위기의 그림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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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지난해 7월 태국에서 시작돼 한국을 거쳐 아시아 전체로 퍼지고 있는 금융위기가 홍콩.싱가포르에까지 번질 것이란 우려가 동남아 금융가에 확산되고 있다.

아시아 금융.서비스의 중심지인 두지역은 모두 외환보유액이 7백억달러를 넘고 경제 기초여건 역시 건실하다.

하지만 인근 국가들을 상대로 한 중계무역.금융의 비중이 워낙 커 인도네시아 등의 금융위기가 장기화되면 계속 안전지대로 남아있기 힘들다.

홍콩.싱가포르는 지난 93년 이후 계속되는 무역수지 적자를 서비스 등 무역외수지 흑자로 보충하고 있다.

싱가포르의 경우 96년 무역수지는 5억3천만달러의 적자를 냈으나 서비스.관광수입 등을 포함한 무역외 수지가 1백59억달러의 흑자를 기록, 경상수지는 흑자가 됐다.

이는 아시아 금융위기가 계속될 경우 결코 안전지대로 남을 수 없음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홍콩은 국내총생산 (GDP) 중 금융.무역.서비스업 비중이 83%에 이르고 전체 수출 가운데 재수출 비중이 90%에 가깝다.

그만큼 대외 의존도가 높다.

홍콩.싱가포르 증시의 주가지수는 인근 국가들의 금융위기가 끼칠 악영향을 우려, 올들어 지난주까지 각각 16.8%, 17.8% 떨어져 뚜렷한 약세를 보이고 있다.

홍콩의 경우 아시아 금융위기의 여파로 최대 증권사인 페레그린과 3위 금융그룹인 CA 퍼시픽 파이낸스가 잇따라 파산신청을 했다.

홍콩달러화의 가치는 지난 14년간 유지된 페그제 (미달러에 홍콩달러를 연계하는 고정환율제) 때문에 물가상승률 등을 감안할 때 미달러화에 대해 30% 가량 고평가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홍콩달러화 방어를 위한 고금리 정책은 기업.금융기관들로선 큰 부담이 되고 있다.

지난해 6월 연 6%대였던 은행간 금리 (3개월 기준)가 최근 12%를 오르내리고 있다.

싱가포르는 말레이시아에 대한 수.출입이 전체의 16% 가량을 차지하고 있으나 과거 7% 이상의 성장률을 과시했던 말레이시아 경제가 올해 2.5% 성장에 그칠 것으로 전망돼 간접적 타격이 불가피하다.

전체 수출액중 재수출 비중도 40%대에 이른다.

이 때문에 일부에서는 싱가포르 정부가 올해 5~7%로 예상하는 GDP성장률을 3%이내로 내려잡고 있다.

또 지난해 11월 금융기관인 ST캐피털사가 외환거래 실패로 3천만달러의 손해를 본 것으로 드러나는 등 직접 피해도 가시화되고 있다.

김원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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