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업협정 파기로 꽁꽁 언 한국·일본 관계…정부, 가능한 강경카드 검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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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일본이 23일 한.일 어업협정을 일방적으로 깨면서 양국관계가 심각한 냉각국면으로 빠져들게 됐다.

특히 일본의 이같은 결정은 김영삼 (金泳三) 대통령과 김대중당선자가 최근 “어업협정 파기를 재고하라” 고 경고한 직후 나온 것으로 사태의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金당선자는 이날 “50년만에 한국의 민주정권 탄생을 앞둔 시점에 (어업협정 파기는) 모욕적인 일” 이라며 강한 불쾌감을 표시했다.

정부는 일본의 협정파기를 '대단히 비우호적 행동' 으로 규정하고 여러가지 강력 대응카드를 마련하고 있다.

먼저 '한.일 조업자율규제 합의' 의 효력정지를 통보하는 것으로 맞섰다.

이는 1단계 조치에 불과하다고 한다.

당장 오는 4월초 런던의 아시아.유럽정상회의 (ASEM) 를 계기로 추진되던 한.일 정상회담 개최가 불투명해졌다.

새정부 출범후 일왕 (日王) 의 한국 방문계획이나 일본의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과 같은 국제사회에서의 한.일 공조방안이 원점에서 재검토되고 있다.

정부가 군대 위안부 문제 등 과거사 청산문제를 앞장서 거론하겠다는 얘기도 흘러나온다.

정부가 이같은 강경 방안을 검토하는 배경에는 일본의 협정파기가 정권교체기의 금융위기라는 한국의 약점을 이용한 외교적 기습이라는 판단이 깔려있다.

외무부 관계자들은 “한국의 어려운 상황에서 일본이 우호.선린관계를 저버린데 대해 당혹과 분노를 느낀다” 며 “대일 (對日) 관계에서 어업이익 못지않게 자존심과 원칙이 중요하다” 고 강조했다.

물론 양국은 어느 정도의 냉각기를 거쳐 어업협정 개정협상을 재개하겠지만 일단 조업자율규제조치 파기만으로도 한.일 관계는 큰 변화를 겪게 될 전망이다.

한.일 양국이 어족보호 등을 이유로 시행중인 조업자율규제가 풀리면 우리 어선이 일본 영해에 바짝 접근해 조업에 나서므로 홋카이도 (北海道) 등 일본 어민의 피해와 불만이 높아질 것이라는 게 우리측 분석이다.

공해상 조업이므로 일본이 어선나포 등 실력행사에 나설 수는 없겠지만 사소한 충돌은 불가피하다는 얘기다.

게다가 양 국민간 자존심 싸움으로 인해 1년내에 새 어업협정이 마련되지 못할 경우 최악의 외교적 상황이 올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양국은 이미 배타적경제수역 (EEZ) 법에 따라 12해리 영해와 2백해리 EEZ를 선포했지만 2백해리 EEZ는 동해상의 대부분 수역에서 중첩돼 동해가 '무정부' 상태로 빠질 것이기 때문이다.

일본의 외교공세를 효과적으로 차단하는 문제는 새 정부의 긴급 현안이 됐다.

金당선자의 종합적인 대일 카드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최상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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